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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BOOK소리 87

최은진의 BOOK소리 87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만약은 없다

저자 : 남궁인 / 출판사 : 문학동네 / 정가 : 14,000

 

 

 

 

죽음을 오래 응시해본 사람도, 찰나의 순간으로 넘기려 애써 온 사람도, 그 생각의 끝은 알 수 없는 공포로 귀결된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외면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 죽음의 현장에 스스로 뛰어들어 도망치지 않고 죽음을 정면으로 맞서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있다. 죽음은 추상적이고 어렵고 철학적인 문제로 귀결되는데, 그에게 죽음은 생생한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끼는 현실이다. 피부에 그대로 와 닿아 머리를 직접 망치로 때리는 듯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을 느껴보시라.

 

이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최대한 담담하게 과장없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정된 죽음에 대해, 의사로서의 고뇌가 담긴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 가슴에 와 닿는다. 단호한 제목이 마음을 무겁게 내려친다. 수많은 만약을 화두처럼 던지며 우리는 살고 있지만, 삶에 만약은 없다는 걸 우린 안다. 억지스런 설정이나 과장된 구성으로 엮은 소설이나 그럴싸한 현학적인 문장의 철학서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감동이 밀려온다. 의사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타인의 불행에 대한 자신의 나약함과 무력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므로 그는 삶을 사랑하는, 진정 용기있는 사람이다

 

지나치게 많은 죽음과 슬픔으로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게 되는 걸 경계한 저자. 그는 택배처럼 배달되는 너무 많은 죽음에, 극심한 육체의 고단함에, 아무것도 벨 수 없는 칼처럼 무뎌져가는 자신을 다스리고자 틈만 나면 글을 썼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 의사로서 적절한 선택을 해야 했고, 매순간 만약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한 인간이 하는 독백에 가슴이 먹먹하다. 하나의 생을 떠나보낸 후, 돌아온 자리에서 그가 하는 독백은 참 따뜻하고 솔직하다. “후회했을 뿐 아무것도 돌이키지 못했을지라도, 죽음과 삶, 이 경계를 다시 복기하는 것으로 그들의 마지막을 함께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