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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BOOK소리 14 - 기억의 풍경을 스케치하다

최은진의 BOOK소리 14 - 기억의 풍경을 스케치하다.

   
◎ 저자 : 정기용 출판사 : 현실문화 정가 : 18,000원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로망이 있다. 아름다움을 접하면 그때의 감응을 나만의 감성으로 스케치로 그려내고 그 느낌을 잃어버리지 않게 멋진 문장으로 남기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므로. 그러나 현실은 우리에겐 그 아름다움을 그려낼 수 있는 그림실력이 없다는 것이고, 그 느낌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능숙한 글쟁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간편하게 셔터를 몇 번 누르는 것으로 그 로망을 대신하곤 한다. 그런 우리의 로망을 대신해 줄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흔한 여행 사색노트가 아니라 깊은 사유와 고뇌가 담긴 책이다.

영화 <말하는 건축가>의 주인공인 정기용 건축가가 평생동안 여행하면서 작은 스케치북에 순간순간을 정직하게 기록했다. 손으로 꾹꾹 눌러서 쓰고 그린 아날로그적 감성이 담긴 그의 스케치북을 살펴보자.

‘공간의 시인’이라 불리는 그의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의 스케치를 따라 가다보면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배우게 된다. 이 책에서 건축물은 딱딱한 고형물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그가 바라보는 장소에는 삶이 있고 역사가 숨쉬고 있고 그것을 끌어내는 건축가의 아름다운 눈과 손과 마음이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건축을 바라보는 기쁨의 눈을 갖게 해 준다.

그의 시선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이탈리아, 미국, 중국, 터키, 베트남, 이집트, 이스라엘 등 많은 도시의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에 가서 닿는다. 건축물을 바깥에서만 보지 않고 안에서 보는 풍경을 중시했다는 그는 건축가가 안 되었다면 분명 시인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지만 건축은 새롭게 짓는 것이다. 죽은 자들을 위한 건축은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고 한 그는 지금 세상에 없지만 그가 남긴 건축과 기억의 풍경이 그를 대신해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