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1 (화)

  • 맑음동두천 15.3℃
  • 흐림강릉 14.0℃
  • 흐림서울 16.7℃
  • 맑음대전 16.8℃
  • 맑음대구 15.9℃
  • 맑음울산 14.1℃
  • 맑음광주 17.2℃
  • 구름조금부산 16.8℃
  • 맑음고창 ℃
  • 맑음제주 18.0℃
  • 흐림강화 14.5℃
  • 구름조금보은 14.9℃
  • 맑음금산 14.4℃
  • 맑음강진군 15.7℃
  • 구름조금경주시 15.1℃
  • 구름조금거제 17.1℃
기상청 제공

도시의 저력은 문화예술이다

며칠 전 서울에서 뮤지컬 한편을 보았다. 교통편이 편리해지다 보니 가끔 서울에 들러 공연을 보거나 전시장을 둘러보곤 한다. 남들은 나에게 문화생활을 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 직업근성에서 비롯된 습성에 가깝다. 

1980년대 말 나는 경기지역 일간신문에 입사해 10여 년 간 줄곧 문화부 기자만을 지냈다.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경기도 수부도시였던 수원시조차 문화예술의 여건과 활동은 현재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나름대로 문화도시를 표방했던 수원시였음에도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황무지나 다름 없었다.

경기도문화의전당도 없었고, 수원야외음악당도 없이 오로지 수원 팔달산 위에 있는 수원시민회관이 제일 번듯한 공연장이었다. 시민회관은 원래 공연장이 아닐 뿐더러, 사실 공연 행사보다는 각종 기념식과 행사가 더 많이 열렸다. 그 외에 극단 수원예술극장과 극단 성 이라는 연극 단체가 각각 자신의 소극장을 갖고 있었고, 작은 갤러리가 수원 남문 등을 비롯해 몇 개 있을 뿐이었다. 음악의 도시를 자랑하는 수원답게 수원시립합창단과 시향이 활동 하고 있었지만 그 후 시간이 더 흘러서야 본궤도에 오른 활동을 펼쳤던 것으로 기억된다.

연극 등을 담당 했던 나는 열악하기 그지없던 소극장 시절, 연극을 향한 사랑과 열정만으로 힘겹게 공연을 연명하던 그들과 동고동락하다시피 했다. 가끔 빵을 사들고 가면 보잘 것 없는 행위에도 그들은 감동을 했다.

그런데 수원시의 문화예술환경은 90년대 초중반 들어 급속히 성장했다. 외형적인 빈곤함의 저변에 문화예술을 향한 지역 예술인들의 열정과 노력이 들끓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힘겨운 가운데서도 일년에 몇 차례씩 공연물을 올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연극인들이 있었기에 지금은 수원에서 국제연극제까지 열리는 것이리라. 수원출신(현재 주소지는 화성임) 홍난파 선생을 기리는 난파예술제도 올해 41회째를 맞았다.

이젠 용인시민이 되어 가끔씩은 수원시와 용인시를 비교하게 된다. 수원시는 오랫동안 문화예술의 도시로 자리매김해왔다. 반면 용인시는 급격한 인구유입으로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가 급상승한 곳이다. 도시규모로 보자면 이젠 전국 어디와도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여건이 매우 풍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인지역에서 문화예술의 저력과 힘을 느낄 수 없음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물론 1990년대 말, 문화부기자를 떠나 용인으로 처음 왔을 때 보다는 질과 양 모든 면에서 크게 발전했다. 당시에는 예총이나 민예총도 없었지만 지금은 매우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런데도 허전함을 느끼는 것은 용인을 근원으로 하려는 고집과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싶다.

여러 장르의 문화예술단체가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음에도 모든 시원을 용인에 두려는, 용인에서 찾으려는 아집, 근성 같은 것이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의 풀뿌리 예술이 발전하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대도시의 문화예술을 향유하던 시민들이 입주하면서 외부의 유명 예술작품이 용인을 휩쓸고 있는 탓도 크다. 결국 저예산으로 어렵게 지역문화예술을 이끌어오던 사람들은 지역에 나타난 공동화 현상을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다.

문화예술계의 저예산과 좁은 활동무대에서 지역문화의 생명력을 이어나가는 일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이제라도 용인시와 지역예술인들은 용인지역의 정체성과 문화 생명력의 뿌리를 찾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