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추리물은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이 왜, 누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규명한다. 이야기는 독자와 팽팽하게 긴장감을 유지하며 범인과 동기를 끝까지 쉽게 내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의심스러운 상황 속에 놓은 인물을 등장시켜 다음 사건을 향하게 한다. 소설은 유령이 된 주인공이 영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죽음에 대한 미스테리를 파헤친다는 이야기다. 소설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가 사선처럼 엮인다. 우선 주인공의 죽음에 관한 미스테리 해결이 큰 축이다. 끊임없이 주변인물에게서 살해의 동기를 찾지만 번번이 그 동기는 무력화 된다. 이야기의 다른 측면은 작가적 고뇌가 차지한다. 주인공의 직업이 작가였기 때문에 작업의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고, 창작 자체에 대한 불안으로 자기복제에 대한 두려움같은 것을 보여준다. 또 한 가지는 끊임없이 제시되는 문학작품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상상력 사전 제시가 다른 축이다. 다른 한편으로 영매의 연인 찾기도 하나의 맥락을 갖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마치 피라미드의 네 꼭지점이 하나를 향해 달려가듯 이야기의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도대체 주인공의 죽음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인가? 죽음을 소
[용인신문] 정치는 실천이 따르지만 과학에는 정치에 비해 실천이나 효용성이 의무로 따르지 않는다. 실용적인 측면보다는 정확한 연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제는 핵무기처럼 인류를 위험하게 만드는 결과물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과학 연구는 투입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무엇을 연구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투자되는 자원은 얼마나 될지 등의 항목을 정하는데 연구자가 속한 사회의 가치관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과학 연구가 가치관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과학에 관한 정책을 입안하는 이들과 과학자가 속한 사회가 생각하는 실천과 과학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스탈린을 예로 들며 과학에도 철학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당대에 육종학이 중요하다고 주장한 과학자 리센코와 환경 개선을 통해 생산량을 늘리자는 바빌로프가 있었다. 바빌로프의 주장은 스탈린과 통했다. 게다가 스탈린에게는 집단농장 정책에 대한 실패에 대해 희생양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육종학을 강조하며 유전자 연구를 중요하게 생각한 리센코는 감옥에서 죽게 된다. 리센코의 죽음과 같은 안타까운 사례를 막기 위해 필자는 ‘투명성’, ‘대표성’, ‘참여’라는
[용인신문] 갑작스런 인공지능 채팅의 유행이 사람들 속으로 진입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고 머리를 맞대 일을 하던 시대는 이제 가는 것인가? 200년 전에도 소설 속에 비슷한 존재가 있었으니 E.T.A 호프만의 「모래사나이」속에 등장하는 올림피아라는 여성 인형이다. 어린 시절 잠 못 드는 아이들에게 모래 사나이가 찾아와 눈에 모래를 뿌린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사실로 믿어버린 나타나엘이 주인공인 이 소설은 짧은 소설임에도 다수의 서술자가 등장한다. 화자가 여럿이라 작품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듯하지만 그 모호함이 이 작품의 매력이기도 하다. 특히 나타나엘이 관심을 갖는 올림피아라는 자동인형은 오늘날 인공지능 비서를 연상하게 만든다. 나타나엘은 올림피아를 사랑하게 된다. 심지어 약혼녀 클라라를 잊을 만큼 올림피아에게 푹 빠진다. 사교모임에 나타난 올림피아에게 절절한 고백을 하는 나타나엘, 나타나엘이 보기에 올림피아는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랑스러운 여성이다. 하지만 서술자가 바뀌면 올림피아는 이상한 여인으로 바뀐다. 구체적인 대답보다는 “아아”와 같은 말을 하고, 지루한 사교모임에 어울리는 하품 대신 재채기를 할 뿐이다. 오늘날
[용인신문] 정현종의 「섬」이라는 시는 너무나 유명해서 따로 소개하지 않아도 ‘아~ 그 시’하고 떠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달랑 두 줄 밖에 안되는 시는 오래도록 인간관계에 대해 말할 때마다 화두로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문학판에서 펴낸 ‘시인의 그림이 있는 정현종 시선집’, 『섬』은 책이라는 물성 안에 예술을 담았다. 우선 정현종의 시를 담은 것으로 그것은 큰 우주다. 여러 평자들이 정현종의 시에 상찬을 남겼으며 대중적인 인기까지 얻고 있다. 정현종은 그 속에서 사람을 이야기하고 관계를 이야기하고 사람이 가야 할 길을 이야기 한다. 두 번째는 시인의 손글씨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시인의 투박한 글씨는 기계가 만든 활자와는 다른 힘을 전해준다. 한 획 한 획 눌러 쓴 글씨에 천 걸음, 만 걸음의 우주를 담는다. 세 번째는 시인의 그림이다. 전문적인 화가의 그림이 아니라 이제 막 그림을 시작하는 시인의 그림이라 더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진다. 그럼에도 시인은 그의 미술에 대해 겸손하다. 네 번째는 일반적인 해설과 다른 해설이다. 작품의 훌륭함을 설명하는 학술적인 용어 대신 오랜 친구를 소개하며 시인의 인간됨을 설명했다. 나이가 들면 삶이 통합된다고 한
[용인신문] 프랑스에서 온 『자코미누스』는 다른 그림책에 비해 조금 길다. 왜냐하면 주인공의 인생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크다. 주인공이 살아낸 인생 속에서 사유의 무게가 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자코미누스』는 어린이 뿐 아니라 어른도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이다. 유화를 보는 듯한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유명 미술관에 들러 휴식의 시간을 갖는 듯하다. 주인공 자코미누스는 평범한 토끼이다. 달에 다녀온 탓에 약간의 불편함을 얻어 가끔은 삶이 무겁다. 그럼에도 자신의 생을 묵묵히 살아나가는 그의 옆에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것보다 중요한 만남이 있으며, 슬픈 이별도 있고, 때로 무력하기도 하다. 물론 충실한 친구가 있는 반면 적도 있다. 생에 대한 질문을 수없이 하지만 답을 얻은 질문은 몇 없다. 그는 사소한 불안을 가지고 있으며 근심은 그가 경험한 어떤 것을 다 합친 숫자보다 많다. 자코미누스에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특별한 삶보다 평범하게 살길 바라는 이들이 늘어가는 요즘이다. 어쩌면 평범하게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자코미누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의 길에 함께 하고픈 마음이 들
[용인신문] 설날이 되면 미디어의 지면은 가족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자주 등장한다. 선배 세대가 이룩해 놓은 일들이 다음 세대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하지만 자칫 지나쳐서 간섭이 되거나 왜곡된 권력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명절의 장시간 이동과 노동은 성역할 갈등으로 이어진다. 요즘은 경제적 문제까지 보태어지고 있다. 1968년에 발표한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or, Meg, Jo, Beth, and Amy)』의 배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름다운 가족이다. 소설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메그와 조, 베스, 에이미가 각자의 일상에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행복한 자아를 발견하고 타인과 조화롭게 지내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쟁 중인데다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풍요롭지는 않지만 어머니를 중심으로 서로 아끼며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 고군분투하는 자매의 모습은 아름답다. 1부의 인기는 2부 집필로 이어진다. 애초부터 소녀이야기로 기획된 『작은 아씨들』은 2부로 이어지면서 여성의 이야기가 된다. 성장한 네 자매들이 가정을 이루기까지의 갈등과 고민이 주요
[용인신문] 어떤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원칙을 고수하는 것과 원칙보다는 현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입장은 늘 부딪힌다. 도덕 교과서와 현실의 차이라고나 할까? 교사와 엄마의 입장이 그렇고 검찰과 경찰의 관계도 그렇다. 『사라진 소녀들의 숲』에 등장하는 환이가 원칙파라면 매월은 유연한 현장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언니 환이는 원칙이 지도와 같아서 길을 잃지 않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는 달리 동생 매월은 언니의 해결방식은 막다른 길에 부딪히게 만드니 현장에서 다른 출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길은 어디에 있을까. 소설은 환이의 제주행으로 시작된다. 제주의 소녀들은 왜 사라졌을까? 그것도 열세 명이나. 소녀들은 숲에서 사라졌고, 민환이의 아버지 역시 그곳에서 소식이 끊겼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게 맞는 걸까? 종사관이었던 아버지는 도대체 무엇을 쫓다가 사라진 걸까? 어째서 동생 매월이는 제주에서 5년 동안 무당과 살아야 했을까?’ 환이와 매월이가 찾아가는 길은 험난하지만 소개되는 제주의 풍경에 빠져 가는 시간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다. 이주 한국인이 쓴 한국이야기라는 특이한 면도 있다. 작품을 읽다보면 결국 매월이의 방식도 환이의 방식도 정답이 될
[용인신문] 『소녀와 고양이와 항해사』라는 제목을 가진 책. 돛대를 칭칭 감은 굵직한 괴물의 다리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먼 하늘을 바라보는 어떤 소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고양이 한 마리가 그려진 표지. 소녀의 이름은 우나. 우나는 다른 평범한 여자아이들과 달리 추운 겨울 바다에서 수영 연습을 했고, 아버지와 항해를 하는 꿈을 꾼다. 그러나 위대한 선장인 아버지는 자신을 이을 위대한 아들이 태어난다는 예언을 믿었으나 태어난 아이는 딸이었다. 우나는 아버지를 존경했다. 우나의 아버지는 고래사냥을 하는 배의 선장이다. 선장이 이끄는 배는 북쪽 나라에서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사냥을 나갔다. 목숨을 걸고 나간 사냥에서 잡은 고래는 식량으로 상품으로 어둠을 밝힐 양초 재료로 쓰였다. 추운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고래를 잡지 못하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 수 밖에 없다. 우나도 아버지의 배에 타서 함께 항해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배에 태워주려 하지 않자 몰래 승선한다. 이 작품은 동화답지 않은 결론을 향해 나아간다. 항해사 해로일드만이 우나를 응원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순간 우나가 아버지를 잃을 작정을 한다는 것이다. 우나
[용인신문] I would prefer not to do.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말은 멜빌의 단편 「필경사 바틀비」에서 주인공이 반복해 하는 말이다. 반복적으로 ‘하지 않고 싶다’는 그의 말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이된다. 그의 실력은 은근히 그를 고용한 사장에게도 자랑거리였는데도 한결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사장을 비롯한 주변 사람을 당혹하게 만든다. 바틀비는 왜 그렇게 말할까? 전 세계의 돈이 모이는 월스트리트 한 복판에서 가장 바쁘게 보내야 할 필경사 바틀비. 하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좋은 실력으로 연봉을 올리며 사장과 타협을 해 보는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자기주장을 하는 바틀비가 이해되기도 한다. 사장에 비해 결정권한이 없는 바틀비. 사장은 언제든지 고용을 거부할 수 있지만 바틀비는 그렇지 못하다. 사장은 언제든 사치스런 음식을 제안할 수 있다. 하지만 바틀비는 어떤 결정도 제안도 힘을 갖지 못한다. 오로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거부할 때만이 권력자들의 시선을 받을 수 있다. “하고 싶지 않다”와 “귀찮다”는 말이 만연한 지금의 우리도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선택의 자유는 적어도 두 개의 선택
[용인신문] 레이먼드 카버는 1980년대 ‘미국의 체호프’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름이 보여주듯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은 한결같이 짧다. 50세에 사망한 작가의 작품이 다수 번역되어 우리 독자들을 찾았음에도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거든』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기도 하며, 이미 번역된 적은 있지만 찾아보기 힘든 작품도 수록되어 있다. 이중 표제작인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은 간결하면서도 오래오래 곱씹어 볼 만하다.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 황급히 떠난 것 같다. 이 침대를 다시 보게 될 때마다 이런 모습을 기억하게 될 것임을 나는 안다.”(121쪽) 황급함, 인간의 생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필연보다 우연이 더 많고 그 일 또한 ‘황급하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처럼 누가 어디에 있었든, 무슨 일을 하든, 그리고 어떤 상황에 놓이든 어떤 사건은 돌발적으로 찾아와 우리 앞에 놓인다. 등장인물의 밤과 새벽 시간에 걸려오는 낯선 전화처럼 말이다. 매번 전화 코드를 뽑아놓고 자야 하는 등장인물의 사연도 흥미롭다. 어쩌다 전화 코드를 뽑지 않아서 오게 된 낯선 전화 때문에 자신들의 미래-죽음의 순간까지 대화를 이어가
[용인신문] 12월이 되면 교회를 가지 않아도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과 산타클로스가 펼치는 판타지가 한데 어우러져 마음은 어느새 축제를 향해 달린다.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저녁 따뜻한 무릎담요를 덮고 읽을 만한 이야기다. 바스티안이라는 어린 소년이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을 피해 들어간 어느 서점에는 고약하게 생긴 아저씨가 이상한 책을 읽고 있다. 바스티안은 그 책을 훔쳐 학교 다락방에서 읽기 시작한다. 현실에서 어머니가 죽고 그래서 슬픔에 빠진 아버지는 바스티안의 낙제에도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다락방에서 읽는 책 속에서는 다르다. 도서는 초록색과 붉은색이 각각 현실과 환상의 이야기임을 알려준다. 책 속으로 점점 빠져드는 바스티안의 이야기는 어느 새 초록색이 된다. 바스티안이 책 속에 온전히 들어가 판타지 속에서 강하고 아름답고 용맹한 전사로 거듭난다. 하지만 판타지는 판타지 안에서만 가치가 있으니 이를 두고 그모르크는 환상세계의 존재가 현실로 건너가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망상이 되지. 실제로는 아무것도 두려워 할 게 없는데 상상의 두려움이 되고,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용인신문] 리프킨은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문제들이 1·2차 혁명의 결과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산업혁명이 일구어낸 자본주의는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지구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네트워크를 점령한 알고리즘은 우리의 사고까지 상업적·정치적으로 지배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를 타개해야 할까? 리프킨은 그의 저서 『회복력 시대』에서 지구의 위기에 대한 원인과 대안을 모색한다. 리프킨은 지구가 위기에 빠진 이유가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급격하게 바뀌는 지구 환경에 인간은 다양한 전략으로 적응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지구의 위기였으니 리프킨이 제시한 구제 방법은 회복력이다. 회복력을 얼마나 어떻게 발휘하는가에 성패가 달려있다는 것이다. 리프킨이 제시한 근거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인프라 만들기 사례이다. <미국의 회복력 3.0 인프라 혁신 America 3.0 The Resilient Society: A Smart Third Industrial Revolution Infrastructure and the Recovery of the American Economy>(2020~2040)(
[용인신문] 호랑이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은 세계가 인정하는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호랑이는 경이감을 주는 영적 지주의 특징을 갖는다. 일제강점기는 한국인의 슬픔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배경이며 한국전쟁은 이념의 대립이 만들어낸 극단적 인간상을 드러내는 데 일조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불행한 시대를 지키려는 야수 같은 인물들이 있으니 바로 소시민들이다. 그들은 그저 생존하기보다 명예롭기를 원한다. 김주혜의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도 이같은 이야기이다. 무엇인가를 지키는 들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이들의 사랑에 대한 역사이자 인류애를 가진 이들의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소녀에서 기적에 오른 여인이 되었으나 예술가로 성장하는 옥희, 타인을 품어주는 지혜로운 할머니가 되어 다음 세대를 지키는 옥희의 삶은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이며 한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으로서의 덕목을 배워가는 여정이 된다. 옥희와 인연이 닿은 이들은 단지 사랑을 위해 살기도 하지만 명예를 위해 살기도 한다. 나라를 팔기도 하지만 독립운동에 젊음과 재산과 열정을 바치는 이들도 있다. 일제강점기로부터 시작되어 해방 후 한국전쟁 시기를 지나 대한민국 초반에 이르는 옥
[용인신문] 조선시대에 벼슬 대신 30년간 전국의 산을 두루 다닌 선비가 있었다. 김홍도는 그에게 단원도를 그려주었고 김만덕의 도움으로 한라산을 오르기도 했다. 선비 채제공은 “창해 자네야말로 썪어 없어지지 않는 존재”라고 칭찬을 하기까지 한 인물 창해일사 정란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다. 『조선 최초의 전문 산악인 창해 정란』은 정란이 다녔던 산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사유를 모아 만든 여행기이면서 삶을 논하는 인문서이기도 하다. 정란은 벼슬을 하기 바라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도산서원에 가려고 길을 나서지만 정작 그가 먼저 간 곳은 낙동강이 흐르는 청량산이었다. 퇴계가 그 산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승 신유한은 정란의 산행을 응원해 가야산 등정을 권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정란이 가장이면서 벼슬도 마다하고 산에 다닌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은 “답은 머리나 입이 아니라 언제나 심장이었지”(108쪽)라고 말한다. 정란을 보면 꿈을 꾸는 사람에게는 그를 돕는 손이 생긴다는 말을 믿을 수 밖에 없다. 산행에 드는 비용을 가족에게 의지할 수는 없는 그에게 보부상이 찾아와 서신을 적어주는 대신 비용을 주겠다고 나서거나 병든 노새를 걱정했는데 새로 나귀가 생긴 것
[용인신문] 시 읽기를 밥 먹는 일처럼 하는 평자가 있다. 바로 신형철이다. 밥을 꼭꼭 씹어먹어야만 삶에 필요한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시를 그렇게 꼼꼼하게 읽는다. 『인생의 역사』는 가을에 출간된 그의 최근 저작물이다. 동서양의 유명 시를 “인생의 역사”라 말하며 그 깊이와 쓰임새를 가늠한다. 책 머리에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고 말하며 시와 시인의 삶과 의미와의 관계를 설명한다. 『인생의 역사』는 고통, 사랑, 죽음, 역사, 인생을 주제로 5부에 나눠 시를 경험하게 한다. 저자는 브레히트의 시를 읽으며 아버지 신형철이 된다. ‘공무도하가’를 감상하며 인간의 삶이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을 탐구한 시를 감상하며 자신을 가르쳤으나 그 깊이를 모른다며 겸양을 드러내기도 한다. 외국 시 번역은 어울리는 단어를 찾아내느라 깊은 한숨을 토해낸 자취를 보여주기도 한다. 부조리한 현실 세계와 시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도 찬찬히 설명한다. 황동규의 시를 읽으며 그 안에서 나와 타자가 조우한다고 말하는 신형철은 시가 공동체를 향해 열린 예술임을 보여준다. 시라는 예술이 지독히도 진실을 간명하게 표현하려는 성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