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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愚農)의 세설(細說)

백성과 소통하는 정치

 

[용인신문] 논어 안연편 12-2장에서 중궁은 스승 공자께 사람의 어진 성품에 관해 물으니 스승 공자는 답한다. 훗날 네가 출사하여 군주가 된다면(집을 나서면) 정치인을(사람을) 만나다면 큰 손님을 뵙듯 공손하며,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서는 큰 제사를 모시듯 섬겨야 한다. 또 중궁 너 자신이 하기 싫은 바를 백성에게 베풀지 않는다면 나랏일 하는 데는 원망함이 없으며 집안일에서도 원망함이 없을 것이다.

 

중궁은 이 말을 다 듣고는 “제가 비록 어리석고 둔하여 민첩하지는 못하지만 전념하여 이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기원전 640년 노나라 장문중이 말한다. 내가 하고자 함을 가지고 남을 따른다면 성공할 수 있지만, 남에게 내가 하고자 함을 강요한다면 성공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또 기원전 530년 정나라 재상 자산의 말이다. 백성들에게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강요한다면 일만 어렵게 할 뿐이지만 백성과 임금이 서로의 하고자 하는 바를 같게 한다면 일에 실패가 없을 것이다.

 

공자는 일생에 철환주유를 두 번 했고, 위나라를 세 번 갔다. 정나라는 두 번 갔는데 기원전 530년이면 공자 나이 약관의 때다. 아마 이때 정나라 재상 자산을 만나서 들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일국의 재상이 무명소졸 공자를 만났다는 것은 공자는 약관에 이미 천하에 이름이 떨쳤다는 방증이다. 그 증거로 공자는 19세 때 국가 최고의전 행사인 태묘에 들어가 국가 제사를 모신 기록이 논어에 있다. 당시 19세의 공자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대략 공자 사후 500년 후쯤 이문장을 평서문으로 바꿔 놓은 자가 예수다. 마태복음 7장 12절의 기록은 이렇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너희에게 이렇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이렇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쯤 되면 이것이 대학에서 말하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의 도道가 완성에 이름이요, 백성들이 격양가를 부르는 곧 국태민안에 경지일 것이다.

 

나라의 정치가 이쯤 된다면 그야말로 성인의 경지 아니겠는가. 성인의 성聖자를 파자해보면 이耳와 정呈의 합자이다. 곧 귀耳는 백성들의 민의를 들으며, 정呈으로는 그것을 백성의 소리로 삼아 백성과 소통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