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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의 문화유산 산책

260여년 세월을 간직한 한옥

용인의 문화유산 산책
7. 이주국장군 고택(정영대 가옥)

 

 

 

공간의 구성·조경 수법 등 조선 후기 양반 가옥형식 보존

 

[용인신문]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 문촌로 252번지에는 이주국(1721~1798) 장군의 생가로 전해지는 오래된 고택(일명 정영대 가옥)이 있다.

 

이주국 장군은 영조, 정조대의 무신으로 조선 2대 임금인 정종의 서자인 덕천군의 후손인데 성품이 강직해서 여러 일화가 있으며 용인지역에 설화의 주인공으로도 전해지기도 한다. 학일교차로 사거리에서 고초골로를 따라 이동 후 문촌1리 방면으로 좌회전해서 문촌로를 따라 400여미터 이동 후 우회전해서 200여미터 이동하면 경기도문화재자료 제96호인 고택에 도착한다.

 

고택에서 조금만 더 산 쪽으로 올라가면 묘소와 신도비가 나온다. 묘소와 신도비는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돼 있다.

 

이주국 장군은 건장하고 뛰어난 용모와 성품이 강직해서 권세 있고 부귀한 자에게 아첨하지 않아 명망은 있었으나 사람들과 대립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여러번 문신들에게 횡포를 당하기도 했다.

 

이런 이주국 장군을 정조는 두텁게 신임해 성도와 궁성의 호위를 맡겼다. 이주국의 호인 오백당(梧栢堂)은 정조가 하사했다. 어느날 정조가 춘당대에서 신하들과 활쏘기를 했는데 그때 이주국의 모습이 당당한 게 마치 추운 겨울철에도 잎이 푸른 소나무와 측백나무 같다고 해서 내린 호라고 한다.

 

이주국 고택은 1753년 영조29년에 건축됐다.

 

낙향 후 우거했던 생가인 목조 고택의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앞쪽으로 보이고, 대문 옆으로는 행랑채가 1자로 자리하고 있으며. 안쪽으로는 ㄱ자 형태의 안채가 자리하고 있다.

 

사랑채는 팔작지붕에 누마루가 있고, 그 아래쪽에는 가마솥이 걸린 아궁이가 보인다. 이주국 장군의 후손들이 살던 집은 100여년 전에 정씨 가문으로 주인이 바뀐 이래 현재까지 정씨 집안 소유로 돼 있다.

 

문화재 지정당시 정영대 선생의 소유로 돼 있었기에 정영대 가옥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정영대 선생의 손주며느리 이기순씨는 이곳이 원래 이주국장군의 고택이었지만 정영대 선생의 부친이자 관란재일기의 주인공인 관란재 정관해 선생이 100여년 전에 안성에서 이곳으로 이사오면서부터 살게 됐다고 했다.

 

이씨는 "원래 사랑채와 안채를 가르는 담장과 중문이 있었고 솟을대문 앞쪽에도 사랑채를 분리한 담장과 문이 있었으나 집을 수리복원할 때 없어졌다"고 말했다. 또 "원래 사랑채 앞에는 작은 홍살문이 있었다"며 "당시의 홍살문을 보관하고 있지만 복원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사랑채 앞쪽에는 수령이 오래된 향나무가 서있다. 정영대의 손주며느리는 정영대 선생이 이곳에 이사왔을 대인 7살 때 심은 나무라고 했다.

 

안채 대청 우측 뒤쪽에 작게 사당방이 있어 감실을 두고 있는 점이 특징이며 현재 이씨는 이곳에 정영대선생을 비롯해 4대의 위패를 모셔놓았다고 말했다.

 

안채 뒤로 돌아가면 봄 햇살을 가득 머금은 뒤뜰이 있고 장독대가 가지런하게 정리돼 있다.

 

260여년 된 고택은 가옥과 공간의 구성, 조경 수법 등에서 조선 후기 양반 가옥으로 격식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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