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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의 문화유산 산책

청동기시대로 떠나는 타임머신

용인의 문화유산 산책
6. 선사시대의 유적 선돌

 

 

악귀 쫓는 수호신 역할 가능성… 풍요 기원 농경 풍습과 밀접

 

[용인신문] 고인돌과 함께 청동기시대 거석문화의 일부인 선돌은 자연석이나 일부만 다듬은 큰 돌을 마을에 세운것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보통 단독으로 한 개가 세워지지만 여러 개의 돌을 열을 지워 세우거나 원형으로 배치하기도 했고 고인돌 옆에 세우기도 했다.

 

용인은 곳곳에서 선사시대의 유적인 선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크게 5지역에 11개의 선돌이 있는 것으로 보고 돼 있다.

 

용인시청쪽에서 원삼 방향으로 곱든 고개를 내려오면서 좌회전 방향으로 달리다 용인시농촌테마파크 진입입구 못 미쳐 우측 논 가장자리 부분에 세 개의 선돌이 우뚝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사암리 선돌은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1990년에 용인시 향토유적 제22호로 지정됐다. 마을에서는 이 선돌 부분을 선돌뱅이라고 부른다.

 

사암리 선돌은 3기가 나란히 서 있다. 커다란 하나의 돌을 세 개로 쪼갠 것으로 보인다. 보통 선돌이 한 기나 두기 서 있는데 비해 사암리 선돌은 세기가 나란히 서있어 이채로우며 더우기 주변 논바닥에 더 있던 2개의 선돌 가운데 하나는 마을 입구에 ‘안꼴물구리’라고 새겨 마을 안내석으로 쓰고 있다. 이처럼 선돌이 무리를 이루는 경우는 드문 예라 한다.

 

높이는 대략 2미터, 폭 1미터, 두께 0.3~0.4미터이며 정동향을 향해 배열돼 있다.

 

사암리 선돌은 마을 입구에서 악귀를 쫓는 수호신이나 선돌 앞 너른 농경지의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 풍습과 밀접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암리 선돌에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어느 부잣집에서 탁발승을 구박하니 중이 이곳에 큰 돌 셋을 세우면 아주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 해서 그 말을 따랐다가 망했다는 설이 있다. 또 시어머니의 구박을 견디다 못한 어느 며느리가 남매를 데리고 집을 나와 서 있다가 그대로 돌이 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남사면 창리에도 1985년에 경기도문화재자료 제61호로 지정된 선돌이 있다.

 

창리천 건너 야트막한 기슭 논두렁에 서 있는데 윗변이 한쪽으로 뾰족해 마치 칼을 꽂아 놓은 모양과 같다고 해서 마을에서는 검바위라 부른다.

 

예로부터 이 마을에서는 선돌이 쓰러지면 마을에 재앙이 일어난다는 말이 있어 선돌을 신앙의 대상물로 삼았음을 보여준다.

 

창리 선돌은 지상에 노출된 부분의 높이가 약 2.1미터, 폭 0.7미터, 두께 약 0.3키터의 크기다. 선돌 아래쪽 0.3미터 높이에 돌로 두들긴 흔적이 있어 마을 주민들이 주술적 목적으로 행위를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삼면 두창리 골안에도 1987년에 용인시 향토유적 제39호로 지정된 선돌이 세워져 있다. 높이 1.9미터, 폭 0.7미터, 두께 0.4미터의 가공된 흔적이 없는 자연석이며 방향은 정동쪽을 향하고 있다.

 

예전에는 매년 정월 보름날 이 선돌에 제사를 지낸 뒤 집집마다 호주의 성명과 생년월일을 적은 종이를 불사르는 행사가 행해졌으며 불공을 올리거나 왼새끼를 꼬아 선돌에 두르고 시루떡에 술과 음식을 차려 제를 지냈다고 한다.

 

용인의 다른 선돌과 달리 선돌 둘레에 장대석들이 놓여있으며 선돌 앞에 넓은 판석을 두어 제사를 지내는 재단으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