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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출가ㅣ정호승

출가

                    정호승

 

폭설이 내린 겨울 들판

불국사 석가탑 같은 송전탑에

작은 새 한 마리

어디선가 고요히 날아와 앉자

송전탑이 새가 되어 적막한 날개를 펼친다

바람이 불고

다시 폭설이 내리고

송전탑에 앉은 새가 말없이 폭설을 뚫고 날아가자

송전탑도 그만 새가 되어 날아간다

그대 멀리

어느 눈 내리는 산사로 출가하는가

 

정호승은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다. 198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1973년 대한일보에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서정시인이다. 독자들을 따뜻한 서정의 세계로 이끈다. 이번 시집 『당신을 찾아서』는 작은 새 한 마리가 하늘을 날아가는 이미지가 보인다. 그리고 그 맑은 하늘 아래 인간들의 땅이 보인다. 그 땅 위의 인간들의 해악이 보이고 참회가 보인다.

「출가」는 예의 새의 이미지가 아름답고 선명한 시다. 폭설이 내린 들판의 송전탑에, 어디선가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는다. 고요하고 적막한 풍경이다. 불국사 석가탑 같은 송전탑은 새가 되어 날개를 펼친다. 새가 폭설을 뚫고 날아가자 송전탑도 새가 되어 날아간다. 동시적 발상이기도 한 이 시가 어른들이 읽는 시로 변환하는 변곡점이 ‘그대 멀리/어느 눈 내리는 산사로 출가하는가’이다. ‘그대’는 물론 새가 되어 날아가는 송전탑이지만 독자로 읽을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창비'간 『당신을 찾아서』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