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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의 문화예술인

잠들어 있던 ‘용인 독립항쟁사’를 깨우다

용인의 문화예술인 22. 김태근 용인학연구소장

 

 

 

2002년 태성중고 역사교사로 재직하며 독립운동역사 남다른 관심
신흥무관학교 교장 여준 선생 연구·이영선 지사 일기 등 발굴 감회

 

[용인신문] 김태근 용인학연구소장은 용인의 3세대 지역학 연구자다. 굳이 그는 향토사학자라는 말을 쓰지 않고 보다 폭넓은 시선으로 지역 역사를 객관화 시켜 들여다보고자 하는 의미에서 자신을 용인 지역사 연구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1세대의 뒤를 이어 3세대가 바통을 이어받아 지역학의 맥을 잇고 잇는 오늘날, 용인학연구소장에게 주어진 역할은 보다 체계화 되고 전문화 된 연구와 정리라고 할 수 있다.

 

중앙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한 김 소장은 특히 한국 근대사에 관심을 두다보니 용인 지역의 독립운동사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 왔다.

 

1990년대 후반부터 지역에서 만세운동 행사가 치러지면서 용인독립운동기념사업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했다. 90년대 후반은 박용익 전 용인문화원장이 지역의 미발굴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서훈을 받을 수 있도록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이인영 전 용인문화원장 역시 개인적으로 용인의 독립항쟁사를 저술하면서 용인에서 지역 독립운동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2002년 용인독립운동기념사업회가 정식 출범하게 되면서 서서히 용인의 독립운동 역사가 발굴되고 기록되기 시작했다.

 

김태근 소장은 당시 태성중고등학교 역사 교사로서 지역의 이같은 움직임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참여의 폭을 넓혀나가고 있었고, 2004년부터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용인독립운동기념사업회에서 본격 활동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운영위원장을 맡아왔다.

 

당장 교단에 있으면서는 학생들과 함께 지역 독립운동 유적지 답사를 시도했다. 현장 학습을 통해 직접 학생들과 함께 독립운동의 의의를 돌아보는 시간은 의미 있었다. 이때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들려주는 용인지역의 역사나 교과 관련 용인지역 문화재, 인물 등에 관심을 보였고 자긍심을 갖는 모습에 흐뭇해하던 시기였다.

 

김 소장은 처음 사무국장을 맡았을 당시만 해도 지역 독립운동사의 연구 기반이 없던 터라 학술대회를 기획해 외부에서 학자나 전문가들을 매년 모셔다가 용인 독립운동 연구의 바탕을 마련하고 자료를 축적해 나갔다.

 

김 소장 역시 사학을 전공한데다 특히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가졌던 역사학도로서 본격적으로 지역 독립운동 연구에 나서 용인의 국채보상운동, 학교교육운동 등 학술발표를 비롯해 수십편의 논문을 썼다.

 

용인의 3.1만세운동을 비롯해 용인지역의 모든 독립운동의 역사가 소중하지만, 무엇보다 여준 선생에 대해 연구한 것은 보람이었다.

 

여준 선생이 원삼면 죽능리에 삼악학교를 세워 후학 교육에 나섰던 정도로만 지역에 알려져 오던 차에 그는 여준 선생이 죽능리에서 태어났고, 어머니가 죽능리에 세거한 해주오씨며, 해주오씨 여성과 혼인한 점 등을 지역사 속에서 조사 연구한 성과를 보람으로 꼽는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여준의 비중에 비해 지역에 묻혀 있다시피 한 여준 선생을 대할 때 아쉬움이 크다.

 

그는 서전서숙, 오산학교 등 여준 선생의 다른 모든 교육운동은 차치하고라도 여준 선생이 교장으로서 혼신을 다해 교육을 펼친 신흥무관학교나 삼악학교를 계승하는 학교 및 기념시설을 용인지역에 세우고, 재현해보는 행사가 열릴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이 두 곳의 학교는 여준 선생과 원삼 죽능리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광선이 스승과 제자의 인연으로 함께 했던 곳인데다, 신흥무관학교의 경우는 여준이 교장이었고, 오광선이 교관이었던 매우 의미 있는 독립운동 현장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요사이는 독립운동가 이영선 지사가 해방 후부터 작고할 때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써내려간 일기를 발굴했다. 20대 도만(渡滿)시기부터 써내려갔던 일기는 모두 분실돼 없다. 남아 있는 일기는 가족과 동포의 귀환문제 등 선생의 인간적 모습과 함께 해방 후 건국과 남한 사회 모습, 지도층 인사들의 행적 등을 살펴볼 수 있어 학술적으로 가치 있는 1차 자료로 평가된다. 여러 루트를 통해 어렵사리 후손을 만나 직접 일기를 손에 들었을 때의 희열, 전율을 뭐라 이야기 할 수 없다.

 

지난해 이한응 열사가 남긴 두개의 친필 유서를 손에 들었을 때의 전율은 실로 대단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써내려간 당시 열사의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한응 열사는 주영서리공사로 재직하던 중 1905년 5월 12일 조선의 외교권 상실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항일의 의지로 자결했다. 이때 형님과 부인에게 두 장의 유서를 남겼다.

 

이는 지난해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용인시민 문화재전 및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 자료전에 후손의 제공으로 전시될 수 있었다.

 

김태근 소장은 이같은 소중한 독립운동 자료가 전시될 수 있는 기념관 건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한응 후손이 자료 기증 의사가 있음을 밝혔지만 막상 제대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는 여전히 발굴 조사해야 할 의병장이나 독립운동가가 무수히 남아있지만 너무 늦었다는 게 큰 아쉬움이라고 말했다. 지근거리에서 그분들의 활약상을 직접 듣거나 정확하게 전해 들었던 후손들이 너무 나이가 많아 기억이 흐릿하거나 대부분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다보면 사실이 왜곡돼 지거나 부풀려질 수 있기 때문에 생생한 현실에 대한 구술이 매우 중요하다.

 

독립운동의 역사는 당대 독립운동가들 자체가 역사였고, 그들의 경험 자체가 역사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 그는 80년대 학창시절에 좀 더 일찍 지역사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점을 후회한다. 늦어도 모교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던 88년부터라도 시작했더라면 용인의 독립운동사가 조금이라도 풍성해질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돌이킬 수 없음에 가슴 아프다.

 

당시만 해도 소수나마 독립운동 생존자가 있던 시점이었고, 후손들도 젊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90년대 중반부터 용인문화원에서 발간하는 읍면지 집필을 통해 본격적으로 지역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부터도 문화원에서 발간되는 자료 등을 읽으면서 지역 뿌리찾기에 관심이 있었고, 학교 현장에서 지역 역사를 연계해 교육시키고 있었다. 그는 특히 용인의 자연지리라든가 영남대로 신작로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자연지리는 문화 형성과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시공이 만나는 게 역사의 현장이 아니겠는가. 특히 영남대로를 문화콘텐츠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역사에 관심을 가질 때부터 갖고 있었다.

 

김 소장은 “앞으로 용인의 지역사 연구는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용인학연구지 같은 연구 토대가 만들어져 더 늦기 전에 용인의 역사가 제대로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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