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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용인신문] 산벚나무

                  박경희

 

법당 언저리 잎 진 산벚나무로 서 있는 내게 주지 스님이 삭발하자, 말씀하시고는 길 따라 내려가신 지 여러달 캄캄이다 달도 차서 참나무 숲으로 기운 게 여러번 눈길 밟아 마음도 득달같이 속세로 달아나버렸다가 미끄러져 돌아오는 날이 돌마당 갈잎으로 뒹굴었다 긴 머리 질끈 묶고 모과나무 그늘에 서서 산 아래 읍내 그림자만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놓고 온 것들에 대한 서글픔이 눈앞을 가리는데 어질어질 산벚꽃 핀 자리로 돌아오신 스님 내 눈을 깊이깊이 들여다보고는 오늘은 안되겠다, 하시며 바랑에 내 설움까지 넣고 또 휘청휘청 고갯길 넘어가셨다

 

박경희는 2001년 『시안』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첫시집 『벚꽃 문신』은 농촌의 삶속에서 신화적 요소가 작용한다는 점에서 이번 시집과 차별화 된다. 뒤숭숭한 꿈자리와 화재, 구렁이의 죽음 후에 저수지 둑의 무너짐 등이 일상생활에서의 신화적 재현이다.

첫시집이 나오기까지 15년이 걸린 것에 비해 이 번 시집은 3년 만이니 그녀의 작업이 궤도에 올라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녀의 시에는 해학과 골계가 있어 유쾌한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가족사를 고백하기도 하도 자신의 이야기를 독백처럼 풀어내기도 한다. 그녀의 시는 지난날 어디서 한 번쯤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데 농촌의 전원풍경과 그곳에서 삶을 영위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그럴 것이다.

「산벚나무」그녀 자신의 고백이라고 읽힌다. 시적 화자는 절에 머물고 있다. 여승이 되기 위해 삭발을 기다리는 중이다. 법당 언저리 잎 진 산벚나무로 서 있는 화자에게 스님은 삭발하자 해놓고는 길 따라 내려가 여러달 소식이 없는 것이다. 그 동안 화자의 마음이 흔들려서 참나무 숲으로 기울기도 하고 속세로 달아나 버리기도 했지만 번번이 미끄러져 돌아와 모과나무 그늘에 서서 읍내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속세에 놓고 온 것들 서글퍼 눈물 글썽이는데 산벚꽃 핀 자리로 돌아온 스님은 화자의 눈을 깊이깊이 들여다 보더니 오늘은 안되겠다 하고는 바랑에 화자의 설움까지 넣고 고갯길을 넘어 가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그 후에도 스님을 찾아 갔겠지만 스님은 끝내 삭발도 연비燃臂도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창비> 간행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중에서. 김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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