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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愚農)의 세설(細說)

거창한 소망보다는 그저 바라던 일 잘되는 한해 되길

 

[용인신문] 초나라 소왕昭王때 정치현실이 몹쓸 극에 달하자 스스로 미친척하며 살던 본명이 육통陸通인 광접여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공자가 초나라 국경에 이르자 그가 탄 수레 옆을 지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중 한 대목은 이렇다.

 

지난 일을 말해 뭣 하랴(왕자부가간往者不可諫).  오는 것은 그나마 따를 수가 있질 않은가(내자유가추來者猶可追. 논어 미자微子5). 이를 중국 동진시대 사람 시인 도연명은 귀거래사에서 다시 풀어낸다. 이미 지나간 잘못을 탓할 수 없음을 깨닫나니(悟已往之不諫) 앞으로의 일은 그래도 뭔가를 해볼 수 있음을 알았노라(知來者之可追).

이를 조선시대 문인 장유는 ‘갑인 년 섣달그믐 밤의 감회’(甲寅除夕有感)라는 글에서 지난일은 뚝 끊어버리고 앞일만 가지고 다시 풀어낸다. 앞날은 그래도 어찌할 수 있으니(래자상가추來者尙可追) 이제부터 모쪼록 다시 시작하리라(자차수갱시自此須更始장유張維계곡집谿谷集25권).

 

그렇다. 이미 지난일 묻고 따진들 뭐 어쩌겠는가. 장유가 이글을 쓸 때가 1612년 26세때 김직재金直哉 무옥誣獄에 연루되어 파직으로 고향인 경기도 안산安山에 은거한지 3년 되던 해 섣달그믐 밤 새해를 다시 시작하자는 다짐으로 쓴 글이다.

 

어려서 사계 김장생의 무릎제자였던 그는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입가처入家妻(사위)가 되기 전까지는 청운의 꿈이 맹렬한 사내였다. 1605년 선조 38년 18세 때 사마시를 거쳐 1609년 광해1년 때 증광문과 을과 등과로 조선 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의 반열에 오르기 까지 불철주야 공부한 사내다. 그런 그가 지난일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며 앞날만 보자며 다시 시작 하잔다. 누구나 그러겠지만 새해를 맞는 이맘때면 생각이 많아진다. 성인이 아닌 바에야 어찌 후회가 없으랴. 사람이 살면서 교묘한 방법으로 법을 비껴나서 요행히도 벌을 피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요행이라는 게 수명이 길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거다. 죄는 지은대로 가고 덕은 쌓은 대로 가는 법이다. 빈이무첨貧而無諂 부이무교富而無驕라 했다. 없다고 비굴하지 말고 있다고 오만하지 말라는 말이다. 일찍이 우암은 매년 이맘때면 출가한 딸에게 편지를 쓰는데 그 말미에 무사무려(無思無慮) 마고소양(麻姑搔痒)을 덕담으로 썼다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걱정꺼리가 없구나.”라는 말로 특별한 소망이 있기보다는 그저 바라던 일이 뜻대로 잘 되기를 희망하는 소박하지만 현실적인 새해 소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