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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용인신문] 

           최정례

 

내 피의 반은 할머니 피다

허리가 기억자로 꺾였던

할머니 뼈는 내 굽은 등뼈가 되었다

나를 안아준 나를 팽개친

내 뺨을 갈긴 아들이 내 속에

함께 산다

내 속에서 국을 끓이는 이

못을 박는 이 불을 피우는 이

할머니다

창 아래 오종종 피어난 채송화

내 눈에 이쁜 것도

촛대를 닦아 꽃불을 피우던

할머니 피 때문이다

할머니 죽던 날

할아버지 마당만 쓱쓱 쓸었다 한다

억울하게 능멸당하면 벌레가 되어 울다가

독버섯으로 피었다가

뱀처럼 늘어지고 싶은 거

할머니 때문이다

(하략)

 

최정례는 1990년 『현대시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의 시는 전통적인 서정시와는 거리가 멀다. 난해하고 다층적이고 산문적인 요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단 20년 후에 낸 『붉은 밭』은 삶의 현장을 깊이 있게 응시하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지극한 껴안음이 미덕인 시집이다.

 

「피」는 할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신에 대한 노래다. ‘여자의 일생’을 들여다보게 하는 시편의 곳곳에는 그녀와 할머니가 얼마나 닮았는지, 사는 모습이 어떻게 빼다 박았는지를 용기 있게 고백해 읽은 즐거움과 삶의 환희와 상황의 전율을 느끼게 한다.

 

할머니 뼈가 그녀의 굽은 등이 되었다고 하지만 할머니만 그녀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를 안아주거나 팽개치거나 뺨을 갈긴 이들이 함께 있는 것이다. 유년의 기억이 그녀에게는 슬픈 통증이다. 누구에게나 그렇다. 그러나 그녀 속에서 국을 끓이고 못을 박고 불을 피우는 사람은 할머니다. 그녀의 일상을 지배하는 할머니는 그녀의 숙명이다.

 

그녀가 억울하게 능멸당해서 벌레처럼 울다가 독버섯으로 피었다가 뱀처럼 가늘어지는 것도 할머니 피 때문이다. 할머니가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최정례에게 할머니는 그녀 자신이다. 그녀가 미래의 손녀에게 물려줄 유전자인 것이다. <창비> 간행『붉은 밭』중에서. 김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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