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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

처인성 인근 산성·유물 실체 밝혀야

성지 답사후 학술토론 이어져



처인성 · 용인에버랜드 · 한국민속촌

삼각벨트 엮어 관광특구 지정하면

관광객 밀물 지역 경제 활성화 기대


박숙현 회장 “역사의 파편들 맞추면

처인산성과 김윤후의 기상과 대면”


[용인신문]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동섭 국회의원(바른미래당·  용인갑지역위원장) 주최로 대몽항쟁의 역사·문화유산적 가치에 대한 학술심포지움이 열렸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참석한 가운데 처인성 주변 산에 대한 산성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추가 학술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돼 눈길을 끌었다.


이동섭 의원은 총평에서 처인성 국가사적 지정 추진 의미를 역설하며 "현재의 처인성 주변 산의 능선과 산에 대한 추가적인 학술 조사를 통해 산성의 흔적과 유물을 찾아야 한다면서  처인성을 용인에버랜드, 한국민속촌과 삼각벨트로 엮어 관광특구로 지정하면중국인 관광객이 대거 밀려와 용인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또 한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 김윤후 승장이다. 김윤후는 의병장의 효시로 민초를 이끌고 적장 살리타이를 사살한 처인성 전투(1232·몽골 2차침략)뿐만 아니라 충주성 전투(1253·5차침략), 한계산성 전투(1259·6차침략)까지 몽골전쟁 중 3번이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인물이라며 여지껏 김윤후가 묻혀 있는 것은 무지의 소산이다. 미래 세대에게 처인성과 함께 김윤후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교육을 시켜 민족적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제발표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사회로 진행된 심포지엄에서 윤용혁 공주대 명예교수는 고려의 대몽항쟁과 문화유산, 김호준 충청북도 문화재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고려 대몽항쟁기 성곽 축성의 변화’에 대한 주제 발표를 했다. 이날 행사는  인성 전투를 고려 대몽항쟁사 전체적인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는 자리였다.


윤용혁 교수는 고려는 13세기 유라시아 대륙을 제패했던 몽골에 저항해 살아남은 유일한 국가다. 43년간의 저항은 세계사에 유래가 없다고려의 대몽전략은 해도와 산성 입보다. 당시 섬과 산성은 공격을 막아내는 유일한 방어 수단이었다고 말했다특히 놀라울 정도로 끈질긴 농민과 향소부곡민, 노비 등 민초들의 항쟁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12311차 침입시 귀주성 전투를 치른 몽골의 장군이 내가 어려서부터 종군해 천하 성지(城池:성과 해자)의 공방을 여러번 보았으나 일찍이 이런 맹렬한 공격에도 끝내 항복하지 않는 것은 처음 보았다고 했을 정도라며 김윤후가 지휘한 처인성 승첩을 의병의 선구로 규정한 조선시대 충청도 의병장 조헌의 언급은 바로 이점을 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호준 책임연구원은 대몽항쟁기의 전쟁 양상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몽골군의 접근이 어려운 험산대성으로의 입보였다해미산성이 해발 500미터, 영원산성은 해발 700미터, 금두산성이 해발 900미터로 성곽둘레가 3900미터에 이르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고려 전역을 초토화 시키는 몽골의 침공 속에서도 백성들은 꾸준히 성곽을 수축하고 정비하면서 항전 의지를 지켜갔다“3차 침략인 안성 죽주산성의 경우 기존 고대산성에 외성을 축조해 수원()을 확보하고 더 많은 입보민을 수용하는 등 이같은 사례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몽골군의 입장에서 포위 범위가 넓어져 많은 병력 동원과 외성을 돌파해도 내성에 고려 주력군 공격이나 매복이 위험 요소였다고 말했다. 고려 정부의 강화도 천도 후 육지에 남은 민초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험하고 높은 산에 성을 쌓고 산성으로 피해 저항할 뿐이었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몽골의 전쟁 양상도 변해 공격 시기를 봄철 파종기나 가을 추수기를 골라 침략, 고려 백성들이 농사 짓는 것을 막아 식량 공급에 차질을 빚게 했다고 덧붙였다.

 

토론

토론자에 나선 용인신문 박숙현 회장은 강화도에 천도한 고려 정부의 산성 입보 명령에도 김윤후는 왜 현재의 처인성인 작은 평지성에 입보했을까. 또 군창도 산성에 있는 게 보편적이라며  대동여지도의 산성 표시, 증보동국문헌비고의 처인산성 표기, 대동지지에 고산성으로 토축 3표기, 한국지명총람의 해발고도 238.9미터의 십자봉 표기 등 처인성을 산성으로 기록한 문헌들의 의미가 궁금하다. 특히 십자봉은 현재 처인성과 한 능선의 산봉우리기 때문에 고지도에 굳이 두 개로 표시하지 않았는지도 궁금하다고 질의했다.  또한 처인성 전투는 고려정부의 강화천도 직후이므로 몽골의 전략상 상상초월의 맹공이 있었을지 모르고, 이런 엄청난 전투에서 적장 살리타이 사살은 대단한 사건일 수 있다는 것과 몽골 적장이 처인성 근처를 지나다 매복한 병사에게 죽었을지 모른다는 기존 예측들은 현재의 작은 성을 기정사실화 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대몽전쟁 중 3차례를 승리로 이끈 엄청난 전략전술가인 김윤후 지휘에 대한 기존 견해들은 처인성 전투의 위상을 자칫 격하시킬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군사전문가 등이 나서 김윤후의 전투장면 재현 등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병성 전 용인시 난개발조사특위원장은 처인성 역사공원조성사업이 많은 고증과 검증을 통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벌목전과 벌목후 드론 사진을 비교 하면서 어마어마한 고목인 상수리나무가 거의 없어졌다. 경기도의 검증 받았다지만 고목이 처인성의 역사적 깊이를 더해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벌목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앞으로 자연과 문화재 경관이 어울리는 여부를 고민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박한규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장은 “70억 가까이 들여서 처인성공원화 사업을 하고 있는데 부정적 면도 있다. 충분히 문화재 관계자 자문을 받아 추진하는 게 좋다고 지적 했다. 황평우 소장 역시 교육관, 체험관도 중요하지만 조사, 연구를 어떻게 하는 것까지도 포함돼야 하고 그런 논의도 함께 됐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윤용혁 교수는 토론에 대한 종합적인 답변과 견해를 통해 용인 처인성 승첩이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것 때문에 사적이 될 수 있느냐. 사적은 지정 요건을 갖춰나가야 되는데 아직도 준비할 요소가 많다. 또 예산을 많이 들여서 공원 만드는 것도 좋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게 정비하는 것이 사적 지정에 어려움을 주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정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는 잘 생각해서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중요한 내용 중 한가지로 박숙현 선생이 제기한 처인성이 다른곳일 수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 많은 분들 역시 현재 자그마한 처인성에서 어떻게 승리가 가능했냐는 의문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사적 지정 효과를 갖추는 과정에서 꼭 확인해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학술행사는 이동섭 의원이 지난 7월 정재숙 문화재청장을 용인으로 초청해 남사면 처인성지를 직접 답사한데 이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