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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항일무장 독립운동가 ‘김혁 장군’ 기록 오류 방치

속타는 증손 김성태·이정하 부부 “인물 정보 오류·누락 안타까워”
국사편찬위 DB 학력·출신 공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卒 누락
현충원 비석에도 피체 일시 오류










[용인신문] 항일무장 독립운동가 오석 김혁 장군(1875~1939·본명 김학소)에 대한 기록 누락과 오류가 바로잡아져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후손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김혁 장군의 증손인 김성태·이정하 부부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의 해를 맞아 다른 사업도 중요하지만 신뢰도가 높은 공식 기록 중 독립운동가에 대한 기록 오류를 바로잡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모셔져 있는 김혁장군의 비석 및 용인 김혁공원 추모비에도 오류가 있다고 말했다.


증손 부부에 따르면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항목에서 김혁을 검색 하면 한민족독립운동사 신민부 이념 편에 신민부 구성원 명단 도표 중 증조부인 김혁 장군의 학력과 출신 부분이 공란으로 비어있음을 지적했다. 신민부 조직원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신민부 중앙집행위원회의 위원들 가운데 학력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드물고, 신분 면에서도 당시 김혁 장군의 부하였던 김좌진, 나중소, 조성환 등과는 달리 김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표기돼 있다.


증손 부부는 국편 홈페이지에서 승정원일기만 검색해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졸업생 128명의 명단에서 증조부를 확인할 수 있다육군 정위를 지낸 증조부에게 후손으로서 죄송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더욱 답답한 것은 국편에 김혁의 신분과 학력을 알 수 없다는 부분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해도 당시 연구성과를 반영한 집필자의 연구물로 자료의 성격상 해당 부분 삭제, 혹은 수정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기흥구 농서리 출신인 김혁 장군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제1회 졸업생으로 대한제국의 장교였다. 육군무관학교 졸업식에는 고종 황제가 대원수의 자격으로 참석해 직접 졸업생들에게 졸업장을 수여했다. 그는 1907년 군대 해산 전까지 고종황제를 지근에서 보좌한 시종무관이었으며,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 소속의 정위(중대장·오늘날 대위)였다.


김혁장군의 출신 또한 경주김씨 갈천공파 11대 손으로 병자호란 당시 의병을 일으켰던 중시조 김원립의 후손이다. 부친 김태식은 법부참서관을 지냈고, 어머니 윤현숙은 파평윤씨다.


물론 승정원 일기나 대한제국군 이력서 등에 본명 김학소로 표기돼 있기 때문에 김혁으로 검색을 했다면 찾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김혁의 본명이 김학소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만일 그런 연유로 오류가 발생했다면 하루속히 바로잡혀야 할 부분이다.


이외에도 김혁은 신민부 중앙집행위원장이던 19281월, 일경과 중국군대가 급습해 체포된다. 그러나 피체 일시도 광복후인 1954, 당시 생존해 있던 신민부원 인터뷰에서 19271월로 알려진 후 많은 기록에 오류가 되풀이 되고 있다. 피체 당시 동아일보 등 신문지상에 대서특필 됐던 기사였기 때문에 일시 확인은 어렵지 않음에도 지속적으로 오류가 카피되는 것은 바로잡혀야 할 부분이다.


특히 후손들은 국립현충원 김혁 장군 묘비에도 피체 일시가 오기 돼 있어 하루 속히 바로잡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용인 김혁 공원 추모비에도 피체일과 순국일이 오류로 기록돼 있다고 했다. 10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출감 후 옥고로 순국한 해가 1939년임에도 1936년에 순국했다고 표기돼 있다.


김혁 장군은 흥업단 부단장, 신민부 중앙집행위원장, 성동사관학교 교장을 지냈다. 당시 김혁장군보다 14세 연하였던 김좌진 장군은 신민부 군사부위원장, 성동사관학교 교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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