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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愚農)의 세설(細說)

문고리 권력

<우농의 세설>

<우농의 세설>

문고리 권력

고려 제7대 목종(穆宗)(집권 997~1009년) 임금 모친 천추태후(千秋太后)는 목종이 집권한 12년 동안 섭정을 하지만 말로가 불행했다.

<20년 봄 정월 계사일(癸巳日) 천추태후(千秋太后) 황보씨(皇甫氏) 훙(薨) 유릉(幽陵)에 장사하다. 고려사 현종세가> 그 시발은 천추태후와 그의 내연 남 김치양과의 궁궐 안 밀회다. 남편인 제5대 경종 임금이 죽고 천추태후가 대비가 되자, 내연 남 김치양은 궁궐 출입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승려를 가장해 태후의 처소를 출입한다.

소문은 장안을 덮었고, 제6대 임금 천추태후의 오빠 성종은 김치양에게 곤장을 친후 귀양을 보냈다. <고려사 김치양전> 참고로 천추태후의 남편인 경종이 죽자 당시 두 살인 태후의 아들 목종이 너무 어리므로 태조의 손자이자 경종의 사촌 형제이며 태후의 오빠인 성종이 왕이 된다.

성종이 죽고 목종(997)이 왕이 되면서 두 사람 사이는 다시 뜨거워진다. 당시 34세인 정력 왕성한 천추태후는 정7품 하위직 합문통사사인(閤門通事舍人)벼슬을 제수하며, 김치양을 정부(情夫)로 끌어들인 후 오늘날의 차관급인 정2품 상서도성 우복야겸(右僕射兼) 정3품 삼사사(三司事)로 승진시킨다. 이일 후 관료 임명권이 김치양 손에 달렸으며, 뇌물을 공공연히 챙기고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저택이 300여 간이 된다(賄賂公行起第至三百餘閒窮極美麗 권127)고<고려사>는 기록을 한다.

쉽게 말해서 대통령 비서실장이든 청와대 문고리 권력이든 빙다리 핫바지<아귀>란 말이다. 역사는 이를 김치양의 국정농단시대라 한다. 더군다나 목종이 후사가 없이 병든 상황에서 천추태후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자 김치양은 그 아이를 차기 임금으로 만들려 한다. 고려사 김치양 열전은 이를 목종이 병석에 누운 틈을 타서 김치양은 쿠데타를 준비했다고 기록한다.

정보는 샜고 서북면 도순검사인 강조(康兆)는 군대를 동원해 정변을 일으켜 개경을 장악 후 목종과 천추태후를 몰아내고, 김치양과 그의 아들을 죽이고 왕순을 임금 자리에 앉히는데 그가 1009년에 강감찬을 등용, 거란 군을 몰아낸 현종이다.

천추태후 사건은 내연 남의 사적 관계가 국가라는 공적 권력을 무너뜨린 예다. 역사는 거울이다. 내연 남 김치양의 일은 결코 천년 전의 과거사가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녀관계가 내연 남으로 비화된다면 가정이든 국가든 심각해진다. 더군다나 국가 최고 통치자와의 개인적 친분을 빌미로 인한 국정농단이라면 국민투표로 선출된 민주적 국가 운영은 끝났다고 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