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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愚農)의 세설(細說)

물론 본인은 억울하겠지만….

<우농의 세설>

관자는 춘추시대(春秋時代) 제나라 환공(桓公)을 도와 천하의 패자(覇者)로 이끈 불세출의 인물이다. 더군다나 비주류에서 주류로 진입한 입지전적의 인물임에도 공자는 “관중은 그릇은 작다”(子曰管仲之器小哉. 論語八佾篇 22文章)며 평가 절하 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입신양명의 길에 들어서려면 아버지로부터 주나라의 문과 예를 배워 천하 군들에게 유세하는 가부장제 교육이 주류였다. 이에 반해 공자는 편모슬하에서 한곳에 정착하는 모계 중심의 비주류의 삶을 살았다. 이러한 성장과정 탓에 관중을 보는 시각이 뒤틀릴 수밖에 없다.

혹자 왈, “관중은 검소합니까”

공자 답, “관중은 집을 세 군데나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검소할 수 있겠는가”

또 혹자 왈, “관중은 예를 압니까”

혹자 답, “임금이 가림 벽을 세우자 관중도 가림 벽을 세웠고. 임금이 두 나라 임금사이의 우호 증진을 위하여 술잔을 엎어놓는 잔대를 설치하자 관중도 잔대를 설치했다. 이러한 관중이 예를 안다면 누군들 예를 모르랴”할 정도로 관중에 대해 가학적이었다.

물론 관중의 업적에 대하여 칭찬을 하기도 한다. 주례복귀(周禮復歸)를 주장하는 공자의 입장에서는 제후의 신하에 불과한 관중의 분수를 넘는 사치가 못마땅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사마천의 평가는 다르다.
“관중의 부귀는 제의 공실(公室)과 견줄 만 했으며, 아내를 셋씩이나 거느렸으며, 집안에는 제후들만이 할 수 있는 술잔을 엎어놓는 잔대인 반점까지 만들었지만, 제나라 백성들은 관중이 사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또 관중의 정치를 평하길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었으며,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더 심한 것은 “관중이 예에 넘치는 사치를 해도 제나라의 백성들은 그를 사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사마천 사기 관안열전(管晏列傳)은 끝을 맺는다.

함량미달 논란 끝에 자진사퇴한 문창극 총리 지명자에 대한 배후로 김기춘 비서실장 이름이 오르내린다. 공자는 말한다. 종심소욕불유구라. 나이가 칠십이 넘으면 무슨 짓(?)을 해도 정도에 어긋남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총리를 지명할 때마다 저 사람만큼은 안됐으면 하는데 기어이 그 사람만 된다. 그때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그 배후로 꼭 거론된다. 물론 본인은 억울하겠지만 뒤집어 말하면, 그 자리가 본인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을 왜 그만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