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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 - 104 | 주 먹 | 이시가와 다쿠보쿠

주먹


이시가와 다쿠보쿠



나보다 부자인 친구에게 동정 받아서
혹은 나보다 강한 친구에게 놀림 당해서
울컥 화가 나 주먹을 휘둘렀을 때
화나지 않는 또 하나의 마음이
죄인처럼 공손히
그 성난 마음 한편 구석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미덥지 못함.

아아, 미덥지 못함.

하는 짓이 곤란한 주먹을 가지고
너는
누구를 칠 것인가
친구인가, 너 자신인가
그렇지 않으면 또 죄 없는 옆의 기둥인가



산다는 게, 살아가는 게 죄 짓는 일의 연속이다. 둥근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보내고 처음 이 세상과 조우할 때, 인간이 손에 쥔 것은 두 주먹밖에 없다. 아프락사스, 부리 대신 주먹으로 한 세계를 깨부수고 다른 세계를 만난 것이다. 인간은 두 주먹 불끈 쥐고 험난한 가시밭길 세상을 헤쳐 나간다. 배고플 때 주먹을 깨물었다는 말, 그건 살아남고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리라. 그런데 세상은 주먹만 가지고서는 살 수가 없다. 요즘엔 돈이 주먹이고 권력이 주먹이고 학벌이 주먹이다. 주먹이 변변치 못해 마음속에 세상을 향한 분노의 카운터블로를 숨기고 다니는 사람이여, 당신의 적은 당신이 아니다. 당신의 적은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의 연약한 이웃이 아니다. 죄 없는 기둥, 만만한 문짝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한들 결국 누가 먼저 쓰러지겠는가? 당신의 적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도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