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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40|이런 이유|김선우

이런  이유

김선우

 

그 걸인을 위해 몇 장의 지폐를 남긴 것은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닙니다

하필 빵집 앞에서
따뜻한 빵을 옆구리에 끼고 나오던 그 순간
건물 주인에게 쫓겨나 3미터쯤 떨어진 담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그를 내 눈이 보았기 때문

어느 생엔가 하필 빵집 앞에서 쫓겨나며
드넓은 얼음장에 박힌 피 한 방울처럼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없이 적막했던 것만 같고-

이 돈을 그에게 전해주길 바랍니다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니라
과거를 잘 기억하기 때문

그러니 이 돈은 그에게 남기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나에게 어쩌면 미래의 당신에게
얼마 안 되는 이 돈을 잘 전해주시길

 


전쟁터에서, 강변 공사장에서, 연탄 화덕 옆에서 돈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간다. 각박한 세상, 참 잔인한 인간의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의 나이를 1년으로 환산했을 때, 인간이 나타난 시기를 굳이 계산해보면, 12월 31일 오후 8시 50분쯤이 된다. 물론, 두 발로 걷기 시작한 것은 훨씬 뒤였을 것이다. 12월 31일 늦은 저녁 홀연히 나타난 작은 종(種)이 기를 쓰고 살아남더니만, 결국 11시 59분쯤에 나타난 돈이란 것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인간에겐 미래가 없다. 그러니 사람아,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사랑 좀 하며 살아가면 안 될까?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