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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의 설움 반세기

맘 같아선 한품에 안길것 같은 고향인데...

"백두산 아래가 고향인 아버님을 따라 화목차를 타고 백두산까지 가곤 했어. 장작을 때서 달리는 증기 기관차의 일종이었던 것 같은데…, 뿌연 연기를 내뿜고 달렸지. 거기서 백두산에만 자생하는 천년축이라는 나무를 베어오곤 했어" 5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 어릴적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김성원(59·역북동) 이북5도민회장. 용인에 사는 실향민의 중심축이 그다.
김회장은 지금도 자신이 자라났던 두만강가의 거울같은 강물이며 마을 규모, 집의 모양 등 떠나올 때 간직하고 온 고향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고향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그의 기억 한켠에 늘 그 모습을 붙잡아 놓고 있다. 매년 6월 25일만 되면 그는 마음을 잘 추스리지 못한다.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각종 특집 방송과 드라마가 애써 묻어두고 있는 고향생각을 다시 불러내기 때문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남북 차관급 회담에도 실날같은 희망을 걸어 보기도 한다. 강산이 변해도 다섯 번이나 변했을 법한 세월이 흐른 지금도 김회장의 고향에 대한 향수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가 38선을 넘어온 것은 해방되던 해인 45년 겨울. 해방후 북쪽을 공산세력이 점령하자 신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고향근처인 함경북도 회령에서 목회일을 하고 있던 부친이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가족을 데리고 월남했다.
한탄강을 넘어 전곡쪽으로 넘어온 그의 가족은 서울 용산 미 8군부대 인근 해방촌에서 남한 생활을 시작했다. 우리가 빚바랜 영상물에서나 보던 DDT로 온 몸을 소독하는 모습, 미군이 배급해주는 밀가루로 죽을 쑤어 먹던 모습이 당시 김회장 일가의 생활모습이었다. 잠시 안정을 찾아가던 그의 가족은 6.25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또다시 남쪽으로 이동, 경북 청도로 피난을 떠난다. 중학교 2학년까지 이곳에서 생활한 그는 용인에서 목회일을 하게된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정착하게 된다.
이것으로 용인과 인연을 맺은 그는 젊은시절 10년 가량 용인을 떠난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이곳을 지킨 용인사람이다. 지난 84년 귀향한 그는 현재 부동산 중개업을 하며 전국부동산 중개업협회 용인시 지회장도 맡고 있다. "실향민 1세대는 평균연령이 대부분 70대 후반을 넘기고 있어. 2세대라고 해도 50대 후반을 넘긴 사람이 대부분이야. 2세대들이 효도하는 차원에서라도 부모들이 생전에 고향을 방문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텐데…" 경제적으였?어느정도 성공을 거뒀지만 이미 노령에 접어들어 거동조차 불편한 실향민 1세대의 소원은 남은 인생 건강하게 살면서 고향에 가보는 것임을 누차 강조하는 김회장. 그 다리역할을 바로 2세대들이 해야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동안 간직했던 고향을 멀리서나마 바라보고자 그는 97년 여름 헌옷 20여벌과 약간의 돈을 가지고 중국을 방문했다. 고향에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져간 물건과 돈을 그곳에 있는 선교단체에 전달한 김회장. 고향을 직접 방문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아쉬운대로 이북오도민회 차원의 중국방문도 자주 가질 계획이다.

"그래도 고향에 가장 가까이 가보고 싶어 두만강 철교에 갔어. 예전의 모습은 간데가 없더군. 유리같은 물빛은 간데없고 용인의 개천물보다 더 더러웠어" 어린시절 삼촌, 이모들과 함께 강가에서 고기잡던 기억을 더듬던 김씨는 북에 두고온 외가쪽 형제와 친척들 생각이 나는지 이내 눈시울을 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