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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용인애향가를 아십니까?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유인상(柳寅相)이라는 분이 제 5대 용인군수로 부임하였다. 1950년 12월 25일 부임하여 1953년 1월 15일까지 재직하였다. 이 기간에 유 군수는 당시 태성학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유달영(후에 수원 농대교수, 5.16혁명 후 재건운동본부장을 역임)에게 의뢰하여 “용인 애향가”가사를 작사케 하고, 음악교사 조승저에게 작곡을 의뢰하여 용인애향가를 만들었다.

이 시대는 국민소득 2백 달러도 안 되는 때였고 용인 인구가 5만도 채 안되는 시기였다. 그 시대를 겪어 본 사람들은 너 나 없이 굶주림에 허덕이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3년 여간 치열한 전쟁을 치루 던 그 와중에 유 군수는 용인 사람이 아니면서도 용인애향가를 만들어 애향심을 고취 시키려 했다는 사실에서 예사롭지 않은 문화 마인드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애향가를 가장 적극적으로 보급한 사람은 박명서 군수였다. 박 군수는 KBS 방송국에 의뢰, 용인 애향가 테잎을 제작하여 새마을 노래와 함께 각 마을에 보급하였고, 아침저녁으로 각급 학교와 마을에서는 애향가가 울려 퍼졌다. 그러니까 박명서 군수 시절에 와서 이 노래가 가장 많 불려졌고, 군청 월례조회 때면 공무원들이 애향가를 제창하는 것으로 끝마무리를 했다.

한 사람의 작은 착상으로 만들어진 애향가는 이처럼 무형의 유산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지 않은가?
국민소득 2백 달러도 안 되는 시대, 지방 공무원들이 예산이 없어 월급을 몇 달치씩 받지를 못했던 그런 시절에, 이런 애향가를 만들었다면, 지금 우리는 국민 소득 2만 달러 시대에다가 공무원들이 600% 보너스에 직책수당까지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알맞은 월등한 문화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당시에는 8분의 6박자 민요조의 애향가를 만들었다면, 이제 인구 75만에 용인시의 재정자립도가 전국 최고 수준이고 일년 예산이 1조 3000억, 이 돈은 강원도의 1년 예산과 맞먹는 수준이라는데, 유인상 군수가 이 시대에 시장을 한다면 아마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용 ‘용인판타지’를 만들었을 것이고 시립교향악단을 만들어 연주했을 것이다.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애국가는 온 국민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코리아 판타지’는 세계적인 명곡으로 연주되고 있다. 그래서 예술이 위대하다고 하는 것이고 그 위대한 예술은 국민이 소유하는 무형의 자산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신적 문화유산을 창조하는 것은 간단한 착상이면 되는 것이다. 이 착상을 한 발짝만 더 발전시킨다면, 이 시대에 알맞은 월등한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며, 그런 문화를 만들었다고 나무랄 사람은 더욱 없을 것이다.

정말 이 고장을 사랑하고 아끼며, 용인의 정서와 유서와 문화를 가꾸고 발전시킬 수 있는 관료가 한 사람만 있었더라면 우리는 행복한 시민이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 ‘세계최고 선진용인’의 불행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