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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꿈에 네가 나왔다ㅣ이수명

꿈에 네가 나왔다

                               이수명

 

꿈에 네가 나왔다

네가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왜 누더기를 입고 있니

누더기가 되어 버렸어

날씨가 나쁜 날에는 몸을 똑바로 세울 수 없는 날에는

누더기 옷을 꺼내 입는다고 했다.

 

꿈에 네가 나왔다.

꿈속을 네가 지나가고 있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걸어가서

너무 쓸쓸해서 땅에서 돌맹이를 주웠는데

빛을 다 잃은 것이었다.

 

돌벽 앞에 네가 한동안 서 있었다.

나는 돌벽이 무너질 것 같다고 피하라고 했는데

너는 집을 나와서 천천히 산책 중이라고 했다.

 

꿈에 네가 나왔다.

아주 짧은 꿈이었다.

 

이수명은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했다.

「꿈에 네가 나왔다」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혼재되어 있는 시로 읽힌다. 꿈에 나온 너는 누더기 옷을 걸치고 있었다. 날씨가 나쁜 날에는 몸을 똑바로 세울 수 없어서 누더기 옷을 입는다는 너다. 너는 꿈속을 아주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나는 너무 쓸쓸해서 돌맹이 하나를 주웠는데 돌맹이는 빛을 다 잃은 돌맹이였다. 너는 돌벽 앞에 한동안 서 있었다. 네가 서 있는 돌벽이 무너질 것 같아 피하라고 했지만 너는 산책 중이라고 했다. 너는 아주 짧은 꿈속에 내게 왔다. 그러니 너는 내게 온 것이 아니라 너를 기다리는 내가 있는 것이다. 문학과지성사 간 『도시가스』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