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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봄여름가을겨울ㅣ진은영

봄여름가을겨울

                                      진은영

 

작은 엽서처럼 네게로 갔다. 봉투도 비밀도 없이. 전적으로 열린 채. 오후의 장미처럼 벌어져 여름비가 내렸다. 나는 네 밑에 있다. 네가 쏟은 커피 젖은 냅킨처럼. 만개의 파란 전구가 마음에 켜진 듯. 가을이 왔다. 내 영혼은 잠옷 차림을 하고서 돌아다닌다. 맨홀 뚜껑 위에 쌓인 눈을 맨발로 밟으며

 

진은영은 1970년 대전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 『문학과사회』에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봄여름가을겨울」은 연시다. 화자는 ‘작은 엽서처럼 네게로 갔다’고 고백한다. 그것도 전적으로 열린 채 간 것이다. 여름비는 오후의 장미처럼 벌어져 시도 때도 없이 내렸다. 그다음의 행이 자못 심상치 않다. ‘나는 네 밑에 있다’고 비밀스런 고백이 뒤따르는 것이다. 커피로 젖은 냅킨처럼 혼곤하게 네 밑에 있는 것이다. 가을은 만개의 파란 전구가 켜진 듯 오고 영혼은 잠옷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것이다. 맨발로 맨홀 뚜껑에 쌓인 눈을 밟으며. 문지 간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