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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사람

이장님은 오늘도 동분서주
늙어가는 농촌에 활력충전

권순동 원삼면 죽능2리 어현마을 이장

 

밤이면 깜깜한 마을에 반짝반짝 조명… 팔각정도 이정표도 환해져

개울가에 매실 열리면 효소 담궈 나눠갖기… 노인들과 특별한 회식

 

[용인신문] 고령 시대를 맞아 농촌 지역에는 대부분 노인만 남아있다. 자식들은 성장해서 모두 고향집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다. 고향 마을을 지키는 것은 노인이 된 부모세대다.

 

자식들이 주말에 가끔 들릴 뿐이다. 어쩌다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잠시 맡겨진 아기는 마을 아기다. 아기가 귀하다보니 동네의 귀염둥이다. 그러나 그런 일도 거의 없다.

 

농촌 마을의 고령화 현상이 심각하다. 활기를 잃어간다. 고요와 정적만이 마을을 감돈다. 마을 중심에 있는 마을회관은 노인들의 집합소와도 같다. 마을회의 구성원들이 대부분 60세가 넘다보니 마을회나 노인회, 부녀회 회원들은 대체로 겹치게 된다. 청장년회가 없어졌고, 새마을회는 활동이 없고, 화장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상조회도 활동이 거의 없다.

 

코로나19로 원주민들조차 왕래가 뜸하다보니 농촌 마을의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이런 가운데 마을에 활기를 주고자 동분서주 노력하는 이장이 있어 화제다.

 

원삼면 죽능2리 어현마을 권순동 이장은 동네에 활력을 주기위해 항상 궁리하고 매사 앞장서서 실천하고 있다. 새해가 되면 권 이장도 68세가 되지만 아직 젊은 측에 속한다.

 

죽능2리 어현마을은 주민등록상 45가구 정도 된다. 그러나 마을일에 참여하는 가구는 30여 가구다. 인구는 100여명이다. 60대 중반의 연령대가 동네의 막내다. 막내라는 것은 동네를 위해 활동하는 나이라는 의미다. 젊은이들도 몇 명 있지만 대부분 직장 다니느라 동네일을 해주긴 해도 적극적으로 맡아서 봉사하지는 못한다.

 

93~94세 연령대가 최고령이다. 90대는 서너 명 정도 되고 80대는 여러 명이다.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독거노인이 되거나 빈집이 된다. 젊은 자식이 들어와서 살려고 해도 직장과 학교 문제로 쉽지 않다.

 

 

권순동 이장은 이처럼 침체된 마을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마을에 조명을 밝히는 사업을 시작했다.

 

저녁5시부터 밤 12시까지 작은 조명을 환하게 밝히고 연말이 되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이는 조명을 켜서 동네를 활기차 보이게 하고 있다. 어현마을 표지석과 팔각정, 현판 등은 전기조명을 활용하고 마을회관 옥상, 울타리 등은 태양열 조명을 둘렀다.

 

“다른데 마을회관에 가면 조명 없이 깜깜하게 있잖아요. 우리 동네는 양쪽에서 불이 네 개가 비춰지고 있어요. 타이머가 고장 나면 고치고요. 일단 어현마을 이정표, 조명불은 항상 환하게 비추죠. 옥상꼭대기 난간에 태양광을 달았고요. 마당 주변에 소나무를 심고 꽃나무도 심었는데 울타리를 한 바퀴 돌렸고, 팔각정 기둥마다 불이 들어오게 돼 있어요. 어디서 보든 동네가 환하죠.”

 

아내 이완호 씨와 여행하기를 즐겨하는 권 이장은 여행 중에 조명을 밝힌 마을을 보게 돼 좋은 사업이다 싶어 죽능2리에 시도했다. 여행을 해도 작은 것 하나 허투루 보지 않고 마을에 적용한다.

 

코로나19전까지는 마을 앞 개울주변에 매실이 열리면 부녀회원을 중심으로 동네 주민 공동 작업으로 매실을 따다가 효소를 담궈 나눠가지는 행사를 추진했다.

 

“부녀회장이 주축이 돼 진행했죠. 올라가서 딸 수 있는 장비와 설탕 값을 대주면 5월 정도에 채취해서 가을정도에 걸러 패트병에 담아 나눠 먹고 그랬어요. 100여kg은 땄어요. 몸 불편하면 못나오는 거고 몸 성한 사람은 나와서 봉사하며 똑같이 분배하는 거죠.”

 

이제는 부녀회원들도 나이가 든 데다 둑 공사로 인해 위험해져서 중단을 결정했다.

 

권 이장은 마을 총회와 별도로 연말이 되면 망년회를 열었다. 반짝반짝 돌아가는 등을 달고 노래방기계를 틀고 집집마다 한 가지씩 음식을 해오게 하면 각자 알아서 음식을 장만했다. 마을회관에 큰 상을 펴놓고 뷔페식으로 음식을 차리면 노인회장이 인사하고 케익 자르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노래방기기로 노래 부르면서 하루저녁 재밌게 놀며 한해를 마감했다.

 

“2013년에 회관이 생겨 행사를 조금씩 시작하게 된거죠.”

 

권 이장은 어르신들을 모시고 마을 회식을 나갈 때도 늘 상 접하는 음식점에는 가지 않는다. 밤에 조명이 휘황찬란한 한터같은 데로 모시고 가서 어른들이 접하지 못하던 파스타같은 음식을 시켜 드린다. 식당 주인이 어르신들 이런 것 싫어하신다면서 다른 걸 주문하라고 충고해도 권 이장은 그냥 시킨다.

 

“노인분들이 좋아하셔요. 아주 잘 잡숫죠. 자식들 오면 이런 것 먹어봤다고 말씀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기분이 좋죠.”

 

세심하게 신경 쓰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동네 주민끼리 마을여행을 떠날 때도 젊은이끼리, 어르신들끼리 무리가 나뉘어 다니는 것이 안타까워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냈다. 젊은이 한명에 노인 너댓명씩 짝을 지어주고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돈을 30~50만원씩 나눠준 후 무얼 먹어도, 무얼 하고 놀아도 좋으니 나중에 영수증만 잘 챙겨 오라고 했다. 권 이장이 농협 임원으로 근무했던 터라 결산은 매사 빈틈이 없다. 결과는 대 성공이다.

 

마을회관 공터에 예쁜 화단 만들어 부녀회원과 노인회 할머니들이 나와서 청소하고 풀을 뽑게 하고 있다. 노인들을 참여시키는 이유는 어울리는 기쁨을 누리고 운동도 하라는 의미에서다.

 

“그냥 나와서 서만 계시다가 식사하러 갈 때 함께 모시고 가는 거죠.”

 

마을 대청소 때도 비용 조금 들여 남들 시켜도 되지만 봄이 되거나 명절 때 내 동네 내가 깨끗하게 한다는 마음으로 하는 일에 어르신들을 모시며 단합한다.

 

옛날에는 척사 대회 때 상품도 주고 권순동 이장이 돼지 농장을 했기 때문에 돼지 한 마리씩 내면서 해왔지만 연세가 들면서 밖에 나와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기가 쉽지 않아 중단했다. 동네 분위기가 좋아서일까. 출향인들도 고향 마을을 살뜰히 챙긴다.

 

“코로나 전까지 우리 동네에는 출향인들이 1년에 한 번씩 찾아와 고향모임을 개최해줬죠. 고기며 과일 등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와서 동네 주민들과 함께 하루를 어울리며 옛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즐기다 가는 행사에요. 이때 저희도 고마움에 대접해드리고 싶어 식사와 천막, 의자 등을 최대한 준비해 드리죠. 우리 동네는 단합과 행복을 위해 동네 주민은 물론 출향인들까지도 한마음이 되고 있어 아직은 살맛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