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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공이고 책임은 책임이다

이미상(시인)

 

[용인신문] 10년 전 필자는 강남역 카페에서 중년 남성 여럿이서 하는 얘기를 엿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의 넥타이와 손목시계에서 돈 냄새가 났다. 그들은 사업얘기를 했는데 특히 자선사업에 대해서였다. “돈 벌려면 자선단체 세우는 게 최고”라고 그들은 말했다. 영화산업에 대한 얘기도 했는데 “김기덕은 안 되고 봉준호에게 투자해야 한다”라고도 했다.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이사장에 대한 각종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자 필자는 10여 년 전에 강남 어느 카페에서 엿들은 말들이 떠올랐다. 인간이 모이고 돈이 모이는 곳에 티끌 하나 없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의연의 오랜 활동과 노고를 알고 있기에 실망도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알고 싶다. 과연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대로 할머니들이 이용당한 것인지, 아니면 언론과 함께 누군가 이용수 할머니를 부추기고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 저의가 무엇인지. 처음 이용수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라고 신고했을 때 “저는 피해자가 아니고 제 친구”라고 했다는 것이 사실인지도 궁금하다.

 

만약 <정의연>을 고발한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윤미향 이사장은 모든 것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설령 정의연의 위법행위가 언론이 부풀린 것이 아닌 가감 없는 팩트라 해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정의연을 고발한 단체가 “위안부상 철거! 수요 집회 중단!”을 외치며 독도가 일본 땅이라 주장하는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라는 것을 말이다. 수요 집회가 없어지고 소녀상이 철거되고 성 노예의 역사를 지우고 싶어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말이다.

 

소만(小滿)에 비가 온 후 공원 풀숲에 죽은 새 한 마리를 보았다. 햇살 아래 개미들이 죽은 새 주위로 모여들고 있었다. 인간들도 돈이 모이는 곳에는 개미떼처럼 몰려들어 피를 빨아먹는다. 정치권도 종교계도 문학예술계도 진보적 시민단체들도 다를 바가 없다.

 

지난 19일 방영한 PD수첩 ‘나눔의 집’ 방송을 보니 나눔의 집을 운영하는 법인이 조계종 스님들이었다. 필자가 10년 전 강남역 카페에서 엿들었던 사내들의 사업과 스님들의 사업은 닮아 있었다. 치욕과 고통으로 젊은 날을 잃어버린 할머니들의 말년만큼은 편안하기를 바라는 후원자들의 정성은 외면당했다. 할머니들에게 최상의 의식주를 제공해야 함에도 후원금이 할머니들에게 닿지 않았다. ‘나눔의 집’측은 운영 미숙으로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참회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운영 미숙이라는 해명을 누가 납득하겠는가. <나눔의 집> 직원들이 직접 고발을 했는데도 조계종 측은 방송이 왜곡했다는 변명을 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챙겨온 직원들에게 사무국장이 “할머니들 버릇 나빠진다.”하고, 할머니들의 색칠놀이 책 한권 구입하는 것도 아까워했다니 분노가 치민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신 후에 호텔 같은 요양원을 세우려는 그들의 계획이 드러났다. 그 사업을 위해 할머니들에게 후원금을 쓰지 않고 아꼈던 것이다. 그들은 사업자금을 위해 할머니들을 이용했다. 후원자들을 배신하고 할머니들에게 또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용납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조계종 측에서는 회계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그들은 명확하지 않는 법의 허점을 알고 모든 것을 계획했음이 틀림 없다.

 

이재명 지사는 지난 20일 나눔의 집을 특별 점검하고 “공은 공이고 책임은 책임이다”라는 글을 SNS에 남겼다. 이참에 전국의 시민단체들을 전수조사 했으면 한다. 반드시 투명하게 조사하고 비리가 있다면 관련자들을 처벌하여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코로나 19의 모범적 방역사례로 대한민국의 국격이 치솟고 있는 지금, 이번 기회에 우리가 구석구석 더 깨끗한 시민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