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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북소리166

[용인신문]

최은진의 BOOK소리 166

영국 화가의 눈에 비친 한국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저자 : 송영달 /출판사 : 책과함께/ 정가 : 25,000원

 

 

1920년대 초 서울에서는 신기한 전시회가 열렸다. 한국을 방문한 영국 화가가 자신의 눈에 비친 한국을 그린 작품들을 선보인 것이다. 3.1운동 직후였던 1919년 한국 땅에 발을 디딘 엘리자베스 키스. 화가의 눈에 비친 한국는 대체 어떤 풍경이었을까? 우리보다 더 우리를 잘 알고 있는 듯 그녀의 그림은 책장을 여는 순간부터 덮는 순간까지 눈을 뗄 수 없을만큼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여행자의 시선을 뛰어넘어 가까운 이웃이 되지 않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함과 깊은 울림이 담겨있다. 이 책은 단순히 예술가의 여행기가 아니다. 진심이 담긴 예술작품이 주는 감동과 함께 일본의 잔혹한 식민지 정책을 고발하고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역사적 자료의 역할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때론 어떤 길고 자세한 설명보다 한 장의 그림이 훨씬 더 깊고 진한 여운을 남기고 글로 전해주는 역사서보다 소중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그림은 전달력과 감화력에서 글로 된 기록을 능가하고, 글은 관찰자의 관점과 글의 표현력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담긴 그림 하나도 허투루 넘겨 볼 수 없다. 한국에서 만난 다양한 인물과 풍경을 사실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묘사해내고 있어 그 사료적 가치도 매우 크다고 한다. 외국인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본 모습들을 담은 그림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게다가 우리조차 잊어버리고 사는 근대 한국의 정감있는 풍경과 소박했던 삶의 모습들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참혹한 현실을 딛고 살아가는 한국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누구보다 따뜻하다.

 

여행의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녀가 한국여행을 통해 갖게 된 새로운 눈은, 한국의 생활 속 깊이 들어와 따뜻한 눈이 되어 이렇게 다정한 그림으로 남았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기 전 먼저 풍경을 들이마셨”고 “그 풍경 속으로 녹아들어가 아예 풍경과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느낌을 종이 위에 재구성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있었기에 이렇게 큰 울림을 주는 그림이 탄생했다. 역사책보다 훨씬 생생한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질 소중한 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새로운 눈”과 따뜻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