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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이 더불어 살아가는 용인, 거듭나는 용인

김종성(소설가, 전고려대 문화창의학부 교수)

 

[용인신문]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는 4차에 걸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해 연평균 경제 성장률 9.7퍼센트를 기록했다. 경제성장을 이룩해 북한공산주의자들을 이긴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박정희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 선포, 8.3조치, 유신헌법, 노동 3권의 제약 등을 통해 국민의 자유와 생존권을 유린했다. 이러한 개발독재에 의한 산업근대화는 많은 부작용을 불러왔다. 그 부작용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환경문제였다. 이것은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삶을 영위해 왔던 사람들이 당면했던 문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개발독재 시대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겪기 시작한 생태위기는 기존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위기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위기였다. 그것은 인간 생존에 관한 위기이며, 인간 행위의 총체적인 위기였던 것이다.

 

용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용인’하면 떠오르는 말이 ‘난개발’이었다. 특히 수지구와 기흥구의 난개발은 전국적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 악명을 떨쳐내 버리려고 용인시가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신도시급 택지개발지구가 동백지구이다. 용인시가 원대한 뜻을 품고 조성한 동백지구는 시간이 흐를수록 빛이 바래지고 있다.

 

동백지구 바깥의 남쪽 지역은 대학병원, 실버아파트, 의료산업단지를 조성한다고 산을 깎아 콘크리트숲으로 만들고 있고, 서쪽 지역은 야산을 깎아내버리고 초고층아파트를 통조림 속의 꽁치처럼 빈틈없이 내리꽂아 하늘빛을 잿빛으로 만들고 바람길을 막아버리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고압송전선로와 영동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북쪽 지역은 녹지를 조성해 완충지역을 만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피스텔, 종교시설, 교육시설, 빌라, 단독주택 등이 마구잡이로 들어서고 있고, 동쪽 지역 석성산 자락은 산비탈을 깎아 전원주택들이 석성산 정상을 향해 달리기하듯 들어서는 등 산지훼손이 심각한 상황이다.

 

그나마 상황이 조금 개선될 조짐을 보인 것은 용인시가 개발행위 경사도를 강화해 2015년 이전 수준으로 환원해 경사도 기준을 수지구 17.5도, 기흥구 17.5도, 처인구 20도로 변경했다. 그런데 용인시 위정자들이 난개발로 오명이 높은 용인시를 바꾸어 보겠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나 용인시 위정자들의 의식은 개발독재 시대의 위정자들의 의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문제다.

 

용인시가 시행정의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는 “사람들의 용인”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사람 중심 용인, 새로운 용인”을 내세우고 있는 작금의 시정(市政)을 보면, 용인시 위정자들의 생태의식이 종래 박정희식 개발독재 시대 위정자들 의식의 연장 선상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느 네스가 주창한 근본생태학은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일 뿐인데도 인간은 자연과 인간이 유리되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특권적 지위를 부정한다. 인간은 그들 자신의 행위가 생태계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서 인간 스스로가 인간 중심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근본생태학과 더불어 생태담론의 중요한 축의 하나인 머레이 북친이 주창한 사회생태학은 생태위기의 원인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 세계를 상품화하려는 시장논리에 기인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어 인간 사회의 위계 구조에서 찾기 때문에 인간이 지닌 지배 속성에 주목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인류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 인간 중심 의식이라는 것을 생태사상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모든 생명이 더불어 살아가는 용인이 되려면 “사람 중심 용인, 새로운 용인”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더불어 살아가는 용인, 거듭나는 용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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