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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테이젼(감염)’ 같은 현실

이미상(시인)

 

[용인신문] ‘코로나 바이러스19’가 일상을 위협하고 있는 지금. 9년 전에 오늘을 예견한 미국 영화가 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젼’( Contation 2011).

 

줄거리는 이렇다. 미네소타 주에 사는 베스는 홍콩 출장을 다녀와 갑자기 사망한다. 그 다음날 그녀의 어린 아들도 똑같은 증상으로 사망한다. 베스 남편은 아내와 아들이 감기에 걸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홍콩 카지노에서 베스에게 서빙을 했던 종업원 남자도 그의 애인도 같은 증상으로 사망한다. 베스가 공항 라운지에서 내민 신용카드, 신용카드를 받아서 결제한 직원, 문고리, 엘리베이터 버튼, 일상의 매개체를 통해 바이러스는 미국 전역으로 전염된다. 국가는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WHO는 역학조사를 통해 감염의 진원지를 파악해 나간다.

 

‘컨테이젼’은 미국질병센터와 세계보건기구 WHO에 파견된 이들의 위기극복 과정을 담았다. 결국 그들은 타원형의 당단백 구조를 찾아낸다. 지금껏 본적 없는 신종 바이러스는 박쥐와 염기서열이 같다는 것도 알게 된다. 치료법도 백신도 없다.

 

질병센터에 모인 전문가들은 초기에 철저히 대응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정부는 시민을 불안하게 할 필요가 없다며 발표를 미룬다. 그 사이 민심은 악화된다. 시민들은 사재기를 하고 총을 들고 빈집을 털고 약국을 부수는 난폭성을 드러낸다. 방위군들이 도로를 폐쇄하고 모든 교통수단이 멈추기 전에 탈출하는 내부자들. 시민들은 정보도 준비도 없이 도시 안에 격리된다.

 

영화는 현실보다 더 리얼하다. 현실에서 일반 시민들은 뉴스 보도 외에는 사태를 알 수가 없다. 뉴스를 진실이라고 그대로 믿을 수도 없다. 영화에서는 시카고 위원이 감염되자 그를 빼내고 공항을 폐쇄해버린다. 그로 인해 임무를 수행하다 감염된 미어스 박사(케이트윈슬렛)는 치료를 받지 못한다. 미어스 박사는 추워 떨고 있는 옆 환자에게 자신의 코트를 건네주면서 죽어간다. 죽는 순간에도 이타심을 발휘하는 사람들. 그런 이들은 영화 속에도 중국 후베이성에도 한국에도 있다. 중국 교민을 위해 자원한 우리 경찰들. 항공사 직원들. 진천과 이천의 주민들. 이들이 있어 우리도 위기를 잘 극복해 가고 있다.

 

반면, 영화 속 인터넷 기자처럼 불안을 틈타 돈벌이에 급급한 이들도 있다. 그들은 오히려 가짜뉴스를 퍼트린다. 불안한 시민들은 진실을 가려내기 힘들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나간다 해도 언젠가 새로운 바이러스는 또 출현할 것이다.

 

컨테이젼(감염)은 나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내 몸을 잘 지키는 것이 결국 내 가족과 나아가 인류를 지키는 것이다. 또한 진실을 왜곡하는 바이러스들로부터 정신의 눈도 잘 지켜내야 한다.

 

누구나 편안하고 배부를 때는 타인의 손길을 모른다. 그러나 곤란에 처하면 누구든 그 손길이 절실해진다. 그때는 감춰온 자신의 이기심과 이타심도 드러난다.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우리는 따스한 손길에 위로를 받는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세계 어디 땅이든 샘물은 분명 존재한다. 그 샘이 있어 우리가 악다구니 같은 세상에서도 목을 축이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어디서나 묵묵히 샘이 되어 주는 이들에게 감사한다. ‘컨테이젼’처럼 중국도 얼른 이 난국을 극복하길 기도한다. 영화 속에서 어느 기자가 질문했다. “사스 때 과잉대응으로 국민의 원성을 사지 않았느냐” 영화 속에서 정부는 이렇게 답한다. “늑장 대응으로 목숨을 잃기보다 과잉대응으로 비난받는 것이 낫다”. 우리 정부도 이 대답을 오래 기억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