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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내일(來日)을 위하여

박소현(방송작가)

 

[용인신문] 제자들에게 늘 존경받던 교수님이셨다. 나 역시도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교수님께 도움을 청했다. 그럴 때마다 열린 해답으로 스스로 깨닫게 하시고. 제자의 우문(愚問)에 늘 현답(賢答)을 주셨다.

 

교수님의 바쁜 일정을 조율하며 어렵게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연구실 조교의 코로나 확진으로 교수님은 검사 결과가 음성이 나왔지만 조심스럽다고 하셨다. 이후에 교수님의 건강을 확인하며 두 번째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게 급한 업무가 생겨서 다음 날 만나기로 한 약속을 또 미룰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은 서로 한 번씩 약속을 어긴 셈이라며 온화한 목소리로 이해해 주셨지만, 마음 한구석 빚진 마음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한 달 후 만나기로 한 약속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다. 최고의 별미를 대접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좋은 장소를 한 달 전부터 예약까지 해두었다.

 

무소식이 절대 희소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소식은 교수님이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연락을 받고 3일 만에 교수님의 부고 소식을 들어야 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허망했다. 엄청난 슬픔과 함께 내 사정으로 미뤄진 두 번째 약속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때 만났어야 했을까…

 

흔히 ‘다음에 밥 한번 먹자’라는 약속을 의미없이 잘 내뱉는다. 나도 가끔 만남을 마무리할 때 적절하게 사용하던 약속이다. 그런데 상대는 그 ‘다음에’를 매우 기다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나도 누군가의 의미없던 ‘다음에’를 기다린 적이 있었다. 먼저 연락해 볼 변죽은 없고, 상대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냥 막연하게 연락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지레 포기하기도 하고 우선 순위에 밀린 것 같은 씁쓸함을 넘어 상대에게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등, 온갖 확인되지 않은 상상을 하다가 마무리한다.

 

‘다음에’라는 말은 그렇게 다양한 생각의 모습으로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힘들 때 도움을 받았던 은인에게 다음에 꼭 은혜를 갚겠다고 말한다. 그 은혜를 갚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가끔 뉴스에서 접하는 훈훈한 미담 뉴스는 그저 평범한 일들이 될 것이다. 학창 시절 도움을 받았던 선생님을 꼭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제자가 몇이나 있을까, 성공한 다음에 찾아뵙겠다는 변명(?)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의 기준이 참 주관적이다. 선생님은 성공한 제자가 아니라 그냥 보고싶은 마음으로 제자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없이 내뱉었던 ‘다음에, 다음에’라고 했던 그 말들이 지켜진다면, 그 지켜진 약속들이 켜켜이 쌓인다면 그 관계들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34년간 전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전국노래자랑’의 명MC이자 원로 희극인 송해 선생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슬프게 했다. 95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다시 활발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충격은 컸다. 전날 식사를 같이 했던 지인은 “내일 당장 돌아가실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라고 울먹이며 인터뷰를 했다. 다음 날 점심 약속을 확인하는 또 다른 후배에게 송해 선생은 내일 먹을 음식 메뉴를 생각해두라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내일은 오지 않았고, 그것이 마지막 통화가 될 것이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남아 있던 내일의 약속이 결국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고 말았다.

 

나에게 남은 ‘내일’은 과연 얼마나 될까. ‘다음에’라고 미뤄 두었던 약속들을 하나씩 지켜야겠다. ‘오늘은 누군가 간절히 살고 싶었던 내일(來日)이었다’ 라는 말이 새삼 와닿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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