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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사람 용인愛

수구초심

이석호(연세대 명예교수)

 

[용인신문]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은 ‘예기禮記’에서 처음 나온 말이다. 수‘首’는 ‘머리 수’자인데 여기서는 동사로 쓰여 ‘머리를 둔다. 머리를 향한다’는 뜻이다. 곧 ‘언덕으로 머리를 두는 첫 마음’이란 뜻이다.

 

옛날 전설에 ‘여우는 죽을 때 옛날 태어나 놀던 산언덕으로 머리를 향하고 죽는다’고 하여 고향을 그리는 심정을 나타냈다. 그래서 ‘고향 언덕으로 머리를 두는 처음의 마음’이란 뜻이다. 곧 애향지심愛鄕之心으로 고향을 그리는 간절한 마음이 깃들어져 있다.

 

하찮은 여우도 죽을 땐 고향을 그리는 처음의 한결 같은 애향심을 가지고 죽거늘, 하물며 사람에게서랴? 사람도 누구나 고향이 있고, 그 고향을 그리워하며 그 고향에 가고 싶고, 그 고향에 가 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니 고향을 두고서도 가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이산가족의 대부분은 고향을 못가는 사람들로 그 고향 생각이 간절함은 애향의 노래로 달래볼 것이다.

 

나도 애향심·수구초심에 젖어 그동안 모아왔던 족보들을 고향에 기증하기로 했다. 그러나 ‘누울 자리보고, 다리 뻗어라’고 때가 익어가야 되는 법인데, 독촉에 못 이겨 장소도 없이 책을 덜렁 내 놓은 것이 잘못이었다.

 

‘나중에 보자’는 말은 믿지 못할 것, 모든 공간과 시설을 갖춘 다음에 책을 주었어야 하는데, 우선 가져가기에 급급하여 10평도 안 되는 원삼주민센터 안의 방 한 칸을 빌어 책을 가져다가 이삿짐 쌓듯이 가두어 놓았으니, 열람도 못하고 정리도 못하고 있다.

 

방에 여유가 있어야 책을 꺼내어 보지, 서가 사이도 몸 하나 겨우 운신할 지경이니, 독자들이 입실 할 수가 없다.

 

세월은 유수 같아 2018년 12월 28일에 책은 실어 갔는데, 1년이 넘어도 책은 활용을 못하고 있다. 열람할 공간이 없어, 궤 안에 쌓아 둔 것과 같다. 책은 보는 것이요, 책 안에 진리가 있고, 그 안에 사실이 기록되어 있어, 열람하지 않고서는 영원히 매장되어 쓸모없는 물건이 되거늘, 어이해 가져갈 줄만 알고, 볼 줄을 모르는가?

 

도서관을 만든다며, 집도 없이, 창고에 쌓아만 둔다면 그 보물들은 사장되어 영원히 빛을 못 볼 것이며, 기증자의 희망은 영원히 물거품이 되리라.

 

다른 지방에서는 폐교를 사 들여 족보도서관을 만든다고 수십억을 책정하여 금년부터 개설에 착수하여 금년 안에 개관한다 하는데, 나는 공연히 책부터 내주어 필요한 때 필독도 못하니, 내 우매함을 스스로 자책 하는구나.

 

용인시여, 빨리 예산부터 세워 우선 건물을 마련하고 내가 소장하고 있는 도서·간찰·골동품 등 온갖 문물을 전부 고스란히 가져 갈 궁리를 해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