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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국보1호’를 잃은 국민들의 슬픔

최인태/용인향토문화지킴이모임 명예회장/최유경 종가(宗家) 22세손

‘국보 1호’숭례문이 폭격을 맞은 듯 숯덩이로 변했다. 그 충격이 일파만파 ‘숭례문 쇼크’로 국민들의 마음을 슬픔으로 적시고 있다.

조선 건국 당시 축성도감(築城都監)의 직책을 띠고 서울의 도성을 쌓은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1343~1413)선생의 종가를 지키며 사는 22세손인 필자는 그 슬픔이 두배 아니 세배는 되고도 남는 듯 하다. 태종13년 현재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사패지를 하사받은 전주최씨 평도공(平度公)파의 후손들은 그 슬픔에 잠겨 있다.

숭례문 화재 소식을 듣고 직접 달려가 현장에서 지켜본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평도공 할아버지를 비롯한 우리들의 선조들의 땀이 어린 얼과 유산까지 불길에 휩싸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평도공 최유경 선생은 국보 제1호인 숭례문(崇禮門)과 호남 제일의 문루인 풍남문(豊南門)을 건립하였다. 그가 지은 ‘숭례문상량기’가 국립박물관에 전한다.

평도공 최유경선생은 생전에는 진천에 살았으며, 세상을 마친 후에는 용인에 영면하고 있다. 큰 아들 사위(士威)는 생전에는 진천에서 부친을 모셨고, 사후에도 부친의 묘소 아래 영면하여 부친의 넋을 모시고자 유언했다고 한다. 전주최씨 평도공파 후손들은 이로 인해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믿고 있다.

평도공파 종중의 기록에 따르면 숭례문은 평도공이 축성도감(築城都監)에 있던 태조5년 9월 착공하여 2년 후인 태조 7년 2월 8일에 준공하였다고 한다.

그후 숭례문은 세종 30년 양쪽 산맥을 연결시켜 개축하였고, 성종 10년에 문을 개축하였다. 고종 15년 임오군란때 왜병에 의해 폭파위기도 있었다고 한다. 6.25전쟁도 무사히 넘겼던 숭례문은 1962년 개보수공사때 상량문 전문이 발견되었다. 이상량문에는 건립책임자가 중추부사 최유경임을 밝히고 있으며, 건립연월일(태조5년 10월 6일)이 적혀 있다.

같은 평도공 후손인 고건축 분야의 인간문화재(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인 대목장(大木匠) 최기영(63) 씨의 말을 빌자면 “기술적으로 본다면 숭례문의 원형 복원은 가능할 것”이라며, “그러나 옛 장인들의 솜씨를 그대로 살리는 건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복원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라면 안타깝지만 최대한 세세하게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이미 타버린 숭례문의 복원도 중요한 문제지만 지금 전국에 남아 있는 문화재를 위한 대책도 시급해 보인다.

경주의 목조문화재는 197개소에 500여채가 있는데 스프링쿨러는 전혀없고 화재감지기만 불국사 등 3곳이 전부인 실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華城·사적 3호)도 이미 여러 차례 화마를 겪은 바 있다.

목조 문화재가 많은 일본의 경우 건물 외곽 지하에 저수공간을 설치해 화재에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 문화재 내부에는 방화가스 분출장치도 갖추고 있다. 목조 문화재가 많은 중국의 경우 야간 출입 등은 엄격히 통제하고, 경비인력을 충분히 가동 중이라고 한다.

선진소방시스템이 도입되지 않는다면 전국에 있는 문화재가 제2의 숭례문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특별소방점검 등 일시적인 미봉책을 떠나 보다 세밀한 문화재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의 얼과 삶이 녹아 있는 숭례문. 화마가 할퀴고 간 모습을 보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참담하고 부끄럽다. 그리고 그 잿더미들이 필자를 향해 사무치게 꾸짖고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되풀이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