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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소유의 윤리

엄태유/국제로타리 3600지구 /전 총재

머슬로우의 욕구법칙에 따르면 인간들의 욕구는 물질문명의 발전에 따라 생존의 욕구에서 소유의 욕구로 그리고 현대는 존재의 욕구로 변해 왔다고 한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필요한 게 참 많기도 하다. 필요한 게 많아질수록 삶의 형태는 복잡해지고 작아질수록 삶의 모습은 단순해지기 마련이다.

보통 사람들은 소유를 위해 평생 땀을 흘려 일하지만 소유가 많아질수록 사람은 그 소유의 노예가 된다. 그 이유는 탐욕으로 쌓여진 소유는 본래 소유의 목적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본래 소유의 목적이란 무엇일까? 나눔이다. 우리가 노력하고 절약하고 땀을 흘려 얻은 재화를 적절히 나누고 살 때 그러한 소유는 그 누구도 노예로 만들지 않는다. 또 평생토록 사람들은 그 누구엔가의 도움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 누구인가를 바로 알 때 비로서 우리는 소유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즉, 나의 소유는 그 누구엔가에게 오늘도 도움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 때 또 도움을 받은 그 누구도 또 다른 누구에게 도움을 끼치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소유는 참 아름다운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재물 , 지식 , 경험 , 건강 , 시간 그리고 관심.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한 것에서 남을 위한 것’으로 위치가 바뀔 때 그것은 질량에 관계없이 참 소중한 것이 된다.
‘나쁜 놈’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오직 나 뿐” 이라고 하는 즉, “나 밖에 모르는 놈” 이라는 뜻이라 한다.

또 그말은 자신의 소유를 자신을 위해서만 써버리는 부류의 통칭일 것이다.
“내 것 가지고 내 맘대로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 ?”틀린 말은 아닐지라도 맞는 말도 아니다.

인권선언 제17조는 인간의 소유권을 천명한다. 소유권 이란 하나의 “신성불가침 ”적인 권리로서, 적법하게 확인된 “공적 필요성”이 명백하게 이것을 요구하는 경우다, 또 사전에 적당한 보상의 조건하에서가 아니라면 아무도 그 소유권을 박탈 당하지 않는다는 권리를 뜻한다.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제임스는 “소유의 본능은 인간 본성의 기초를 이룬다.” 라고 했다. 공자도 “군자유어의 , 소인유어의(君子喩於義,小人喩於利)”라고 말했는데, 즉, “군자는 의에 밝고 , 소인은 이(利)에 밝다”는 말이다.

즉 , 사람은 “이(利)를 추구하되 의(義)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 이다.
그래서 “더러운 이익은 손해와 같다”고 하는가 보다.

철학자 사르트르가 “화폐는 나의 힘을 표현한다”라고 했듯이 돈이란 힘을 가지고 있어서 인간생활에 실력을(힘) 행사한다.

“돈이면 안되는 게 없다”라고 까지 하는 물질만능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지만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사회적 선을 실현하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신은 30%의 부유층에게 70%의 빈곤층을 맡겼다고 한다. 그러나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해이 현상’은 이러한 질서를 무감각하게 만들었으며 부익부 빈익빈의 격차만 날로 크게 벌어지게 하고 있다.

실직자의 아픔과 결식자의 허기진 모습을 생각하면서 내 소유가 사치와 허영에서 떠나 낭비되지 않고 올바로 쓰이는 것을 기뻐하며 행복해 할 때 비로소 소유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利)가 의(義)의 규제를 받을 때 비로소 우리의 소유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소유의 윤리”인 것이다. 120만 세계 로타리안 들은 “4가지 표준” 이라는 윤리강령을 지키며 살아간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데 있어서 △진실한가 △모두에게 공평한가 △선의와 우정을 더하게 한가 △모두에게 유익한가” 이 네 가지 표준을 삶 속에서 실천할 때 비로소 소유의 진정한 가치를 이웃과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이 4가지 표준은 오늘도 세계 방방곡곡 그늘진 곳을 찾아 희망과 용기와 꿈을 키워주는 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소유가 나눔의 균형을 잃을 때 사람은 일순간에 평생을 애써 살아온 명예가 순식간에 무너지며 불행에 빠지게 하는 모습들을 요즘 매스컴을 통해 우리는 심심찮게 보고 듣는다.

소유와 나눔의 균형! 이것이 바로 “소유의 윤리” 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