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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처럼 흘러가는 유년의 기억속에 송현호의 작품이 있다.
그곳엔 어머니가 있고 가족이 있고, 가족과 나눴던 행복한 대화가 있고, 그리움이 머물러 있다.
낙동강 하류에서 태어난 작가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부산이지만 그는 강과 바다와 농촌이 어우러진 곳에서 유년을 보내면서 강바람, 바닷바람, 산바람을 맞고 자랐다.
마치 동네 어귀에 늘어서 있던 미루나무 인 듯한 나무 위에 집들이 얹혀져 있기도 하고, 뒷마당에 자랐을 커다란 늙은 호박 위에도 집과 나무가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가하면 고동위에도 집과 나무가 앙징 맞게 앉아있다. 마치 어린왕자가 살고 있는 별처럼 바오밥 나무가 서있는 듯한 느낌과 함께.
그에게서는, 그의 작품에서는 그가 뛰놀던 강의 냄새, 바다의 냄새, 혹은 산과 들의 냄새가 묻어난다.
그래서 보는 이도 덩달아 유년의 기억 속에 있는 그리움 속으로 풍덩 뛰어든다.
“작품의 하반부에는 자연물이 놓이지요. 앞마당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소재를 선택해서 그걸 바탕으로 작업을 합니다. 일종의 가족에 대한 기억 같은 것이죠.”작가는 호박이나 소라의 무늬를 패턴적으로 반복하면서 그 속에 무수한 기억 혹은 추억의 장면이 시간대별로 켜켜이 머물러 있음을 암시한다.
작품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표현돼 있다. 호박, 고동, 나무, 집 등과 같은 구체적 형상이 포근하게 형상화 돼 있다.
“저는 어머니가 이해할 수 있는 작품, 나와 내 가족이 먼저 이해할 수 있는 형상을 만들어요. 그렇게 해야 대중과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죠.”
#돌과의 호흡
“작업은 생각의 잔가지를 쳐 나가는 과정입니다. 많은 생각을 쳐 나가다보면 가족 이야기라는 함축적인 형상이 남게 됩니다.”
그가 다루는 테마는 가족이다. 고향과 유년의 기억 속에서 가족을 뽑아내서 가족의 기억을 자연의 흔적인 돌 속에 담아낸다. 가족은 가장 원초적인 자연의 형상이다.
“어쩌면 원래 돌 안에 있는 돌의 형상을 뽑아낼 뿐인지 모르죠. 그래서 작품마다 거친 면을 한 부분씩 살려냅니다. 물론 처음부터 커팅도 하지만 원래의 돌의 형상 그대로 한 부분을 남기죠.”
돌과의 긴 호흡.
가족 사이에 얼마나 많은 대화와 사유가 있었겠는가.
송현호는 그런 수많은 기억의 잔가지를 툭툭 쳐내 집 한 채 덩그러니 남기거나 옹기종기 집 몇 채 남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수많은 기억은 버블 속에 집어 넣는다. 그의 작품은 그래서 크게 하반부의 자연물과 집과 버블로 나뉜다. 집속에서 나눴을 가족간의 대화와 기억은 버블이라는 추상적인 공간에 얼마든지 담길 수 있다.
집이라는 공간과 함께 버블이라는 시간성이 아담하게 형상화 된다.
물론 기억의 크기는 작가의 몫이기도 하지만 관람자의 몫이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자신의 추억이 많으면 버블속에 이야기 거리가 많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허무하게 빈 거품일 수 있다.
“앞으로는 좀 더 단순한 형상으로 작업할 생각입니다. 형상의 군더더기도 함께 쳐 나갈 생각이에요.”
작품마다 들어 있는 나무는 생명의 이미지다. 버블과 집에 생명성을 불어넣으면 유년이, 고향이, 가족이 가슴속에서 살아난다.
집 형상에는 초가집 같은 것은 없다. 그가 이태리 까라라에서 유학하던 때에 살 던 동네의 형상이 그의 기억에 또 다른 고향으로 남아있는 때문이다. 그곳에는 산위에 집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런 마을을 작은 나라라고 한단다. 그의 작품에 들어선 집들은 유년의 작은 나라로 함축된다.
그의 가족이라는 테마는 결정적으로 이태리 유학의 산물이기도 하다. 고향과 뚝 떨어진 이국에서 느끼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향수 같은 것이 그를 줄곧 가족으로 몰고 갔고 결국 가족으로 테마가 굳었다.
그는 대리석이라는 재료를 통해 묵묵하게 가족이라는 주제의 작업을 고수한다. 지금 내 눈앞에 놓여있는 작품 나무 위의 작은 나라는 나를 유년의 기억 속으로 끌고 간다. 미루나무가 늘어서 있는 너무나도 가고 싶은 유년의 기억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