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선歸船ㅣ한경용

  • 등록 2022.01.24 09:2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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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선歸船

                   한경용

 

나의 할아버지는 어부시다

작은 배 한 척이면

노을이 물결 위에 잠들 때까지

어망 속으로 태양을 걷어 올린다

파도를 저어가며

시름을 건저 올린 팔뚝의 힘줄에는

살아 있는 고기들이 노래하곤 한다

바다를 메고 오실 만선의 가슴을 위해

달음 쳐 나간 폭풍우 치던 갯가

남은 가족 모두가 울음을 토하고

할머니는 슬래브 지붕에 올라가

와이셔츠를 흔들고 계신다

남쪽으로 흐르는 신화

선홍빛 염주 터뜨린 언어들

빈 그물을 빠져나오고 있다.

 

한경용은 제주도 김령리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2010년 계간 『시에』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그의 지난날에 대한 오래고도 진중한 고백과 스스로의 삶을 통한 미학적 탐구의 과정이 시로 승화 된 것으로 보인다. 내밀한 자전적 고백의 시편들이 여러 편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귀선歸船」은 어부였던 할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레퀴엠이다. 작은 배 한척으로 바다를 낚아오시던 할아버지는 그날 죽음으로 돌아왔다. 폭풍우 치던 날이었다. 가족 모두가 갯가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혼백을 부르기 위해 슬래브 지붕 위에서 할아버지의 와이셔츠를 흔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이미 신화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왕생극락을 비는 독경이 빈 그물을 빠져나오고 있는 풍경은 슬프고도 아프다. <서정시학> 간 『고등어가 있는 풍경』 중에서. 김윤배/시인

김윤배 기자 poet01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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