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남물빛정원 뮤직홀’ … 방치 하수처리장 변신 이끌어
도시 커진다고 문화가 절로 생기는 건 아냐… 오히려 영혼의 허기
세상과 사람의 마음을 읽는 마에스트로… 새로운 도전 지휘봉
용인신문 | 용인신문은 2026년 새해를 맞아 한국 클래식의 대중화를 이끈 마에스트로 금난새를 만났다. 이번 인터뷰는 본지 박숙현 기자가 20여 년 전 그와 나누었던 대화의 기억을 복기하며, 거장이 바라보는 예술 경영의 정수를 담기 위해 기획되었다. 성남 구미동에 27년 동안 버려지고 있는 폐하수처리장을 ‘성남물빛정원 뮤직홀’로 탈바꿈시킨 혜안을 통해, 도시의 품격이 어떻게 디자인되어야 하는지 그 해법을 모색해 본다. 이번 인터뷰 전문은 경기문화재단이 발행하는 <경기학 광장>에 실릴 예정이다. [편집자 주]
■ 폐하수처리장을 실내악 음악홀의 메카 ‘음악홀’로 재탄생
과거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던 폐하수처리장이 지금은 클래식의 성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금난새가 명명한 ‘성남물빛정원 뮤직홀’이다. 그는 이곳에서 인터뷰의 첫 운을 뗐다. “성남에 온 지 11년입니다. 어느 날 방치된 이곳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쳤죠. 다들 코를 막았지만, 제 눈에는 여기가 ‘보석’으로 보였습니다. 지휘자의 역할은 단지 악보를 읽는 게 아니라, 소리가 머물 공간의 가치를 읽어내는 것이죠.”
기자의 눈에 비친 그는 ‘공간의 연금술사’였다. 그는 지휘봉을 들기 전 설계도부터 들여다봤다. “시장님께 말씀드렸죠. 전임자들이 해결하지 못한 이 난제를 문화로 풀어보시라고. 150석 규모의 밀도 있는 홀을 만들면, 하수처리장이 음악홀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민들은 엄청난 반전의 기쁨을 느낄 것입니다.” 하수처리장의 공기를 음악으로 정화해내는 그의 작업은 도시 경영의 고차원적인 디자인이 무엇인지를 웅변하고 있었다.
■ 예술을 ‘수요자 중심’ 바꾼 경영자
대화는 자연스럽게 30여년 전 수원시립교향악단 시절로 흘러갔다. 1992년, 당시 지방의 클래식 시장은 황무지였다. “처음 수원에 갔을 때 관객이 80명도 안 됐어요. 그때 결심했습니다. ‘시민이 필요로 하지 않는 음식을 대접하는 지휘자는 되지 않겠다.’ 그래서 낸 아이디어가 ‘시무식 로비 음악회’였습니다.”
그는 권위적인 강당 대신 시청 로비에 오케스트라를 세웠고, 시무식을 마치고 나오던 공무원들은 클래식 선율에 발을 멈췄다.
“시장님이 감동해서 그 자리에서 단원 보너스를 인상해줬습니다. 우리가 먼저 움직이면 시민은 반드시 화답한다는 걸 증명한 겁니다.”
지휘자 금난새는 공급자 중심의 예술을 수요자 중심으로 바꾼 경영자였다. 화장터 부지를 야외음악당으로 낙점하고 기업 투자를 이끌어낸 과정 역시 ‘장소의 인문학’적 전환이었다. 기업 로고 대신 ‘시민의 행복을 위해 삼성이 지었다’는 문구를 새기자고 제안한 노련함은 예술이 사회적 가치와 자본을 연결하는 탁월한 사례였다.
■ 이웃도시 용인에 묵직한 메시지
용인시 경계와 불과 5분 거리도 안되는 도시의 길목에서 필자는 묘한 긴장감을 느낀다. 마에스트로가 일궈낸 변화는 이웃한 우리 도시에게도 소중한 거울이다. 성남과 경계를 맞댄 이웃 도시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팽창하는 인구와 산업 규모에 비해, 시민의 영혼을 달래줄 ‘문화적 안식처’는 여전히 빈곤하다.
금난새는 지적한다. “도시가 커진다고 문화가 절로 생기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물질적 풍요가 영혼의 허기를 가리기도 하죠.” 기자는 그의 말에서 핵심을 보았다. 거창한 건물을 짓기보다 우리 발밑의 익숙한 공간에 예술의 숨결을 불어넣는 혜안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이웃 도시가 하수처리장을 음악홀로 바꿀 때, 우리는 혹시 새 건물을 지을 땅만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 맨땅에서 일군 ‘민간 오케스트라’
1999년, 그는 보장된 지위를 버리고 민간 오케스트라 ‘유라시안 필’을 창단했다. 누구도 성공을 장담 못한 ‘클래식 벤처’였다.
“삼성 윤종용 부회장을 만났을 때 ‘우리는 벤처다. 실패하면 지원금 다 돌려주겠다’고 호기를 부렸죠. 그 진심이 통해 9년간 후원을 받았습니다.”
연습실이 없어 국립중앙도서관 로비를 빌리고 대신 무료 공연을 제안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예술가는 지원만 바라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가치를 증명해야 합니다.” 포스코 로비에서 울려 퍼진 교향곡은 삭막한 비즈니스의 공간에 영혼의 숨구멍을 내는 경영적 결단이었다. 그의 네트워크는 뉴욕으로 확장되어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과 함께한 ‘대사들을 위한 음악회’를 통해 음악이 가장 품격 있는 외교 언어임을 증명했다.
■ 리더는 해결하는 사람
경기도와의 인연 또한 그의 추진력을 보여준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겸 상임 지휘자를 제안 받고 미리 경기도문화의전당을 둘러봤어요. 당시 음향판이 싸구려 합판이더군요. 예산 달라고 공무원과 씨름하는 대신 기업인을 찾아갔습니다. ‘도민에게 제대로 된 소리를 선물하자’고 했더니 2억 원을 쾌척하시더군요.”
지휘자로 부임하기도 전에 직접 음향판을 교체해버린 에피소드는 행정이 아닌 예술의 문법으로 세상을 바꾸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는 “리더는 문제 앞에 예산을 탓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원을 연결해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비단 예술계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의 리더들이 새겨들어야 할 금언이다.
■ 치열한 발자취 지워진 흔적들
인터뷰 막바지,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평생 일궈온 공간들이 시간이 흐르며 잊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수원 야외음악당에 10년 전에 가보니 제가 새겼던 기념 문구들이 지워졌더군요. 치열하게 고민해 문화를 만들었던 ‘역사적 증언’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운 거죠. 기록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요.”
금난새와의 대화는 음악을 넘어 경영, 외교, 건축을 아우르는 인문학적 여행이었다. 그는 텍스트에 갇힌 예술가가 아니라 컨텍스트를 읽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문화 솔루셔니스트’였다. 20년 만의 재회는 그렇게 ‘기록’을 넘어 하나의 ‘비전’으로 정리되었다. 마에스트로 금난새. 그의 지휘봉이 그려낼 다음 악보는 또 어떤 버려진 공간을 깨우고 사람들의 마음을 묶어낼까. 그의 항해는 2026년에도 여전히 순항 중이다.
<박숙현 기자/ 사진 김종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