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강 속에 찹쌀을 넣어 보내면
부부 금슬이 좋아진다.
흔히 가까운 친척이나 신부 아버지의 친구들은 신부감에게 "너 시집 갈 때 요강 사줄께"하며 말한다. 요강은 혼수감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신부에게 가장 중요한 물건이었기에 그같은 말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요강 속에 찹쌀을 넣어 가는 것이 통례였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자못 흥미롭다. 요강에 얽힌 이야기 몇가지를 정리해 본다.
<요강은 혼수감 가운데 필수품>
옛날에는 혼례 때 신부가 가지고 가는 혼수감 속에는 요강이 필수조건처럼 따랐다. 그리고, 요강 속에는 찹쌀을 넣어 가는 것이 통례인데, 이것은 부부금슬이 찹쌀처럼 좋아진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솥뚜껑이나 요강은 일반적으로 여성을 상징하는 바, 찹쌀처럼 차진 여근(女根)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생각하면 이는 모방성행위, 즉 성행위의 상징적 표현으로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결혼을 통해 음양의 응합을 이루며 생산이 가능해지는데 음양의 응합이 활발할수록 생산력도 활발하게 작용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풍요·다산도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러한 음양의 법칙을 여러가지 모방성행위를 통하여 상징화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실용적인 지혜도 엿보인다. 신부가 가마를 타고 갈 때 소변을 보게 되는 난감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가마 안에서 소변을 보게 되는 경우라도 요강 속에 찹쌀떡을 넣어두면 자연스럽게 소리를 방지할 수 있다. 시댁에서는 요강 속에 담긴 며느리의 소변을 감지하여 합궁일을 택했다는 설도 있다. 요강에 울리는 소리를 통해 음력(陰力)을 가늠하기도 했다. 그러니, 신부는 소변을 보는 자체가 두려울 수 있었을 것이다. 평소에는 그 같은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볏짚을 요강 속에 넣어 두었다고 한다. 볏짚 역시 생산과 출산, 풍요를 상징한다. 찹쌀떡이든 볏짚이든 요강 속에 넣어 남들의 별다른 시선을 피하려 했던 지혜도 함께 살필 수 있어 흥미롭다.
<요강은 적어도 고려시대 이전에 나왔다>
요강은 적어도 고려시대 이전에 나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용하기 편한데다 남녀 구분이 없어서 집집마다 이용하였다. 임금에서부터 평민까지 두루 사용한 가구가 바로 요강이기도 하다. 임금의 건강을 알아보려고 요강 속에 든 소변의 양이나 색깔을 분석하는 것이 내관의 일이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과거 시험장에서 박으로 만든 요강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를 과장호자(科場虎子)라 한다. 시험 도중에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요강에 더러 예상 답안을 넣어 가지고 들어가서 급제한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을 호자당상(虎子堂上)이라 한다.
<복 있는 과부는 늘 요강 꼭지에 앉는다>
우리말 속담 가운데 요강에 관련된 것이 몇 가지 있다. "시앗 싸움에 요강 장수"라는 속담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 끼어 들어 참견한다는 뜻이다. 두 사람의 싸움에 제 삼자가 덕을 본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요강 단지 받들 듯"이란 말은 매우 조심한다는 뜻이다. "요강 뚜껑으로 물 떠 먹은 듯하다"라는 말은 매우 꺼림직한 경우에 쓰는 말이다. "복 있는 과부는 늘 요강 꼭지에 앉는다"는 말은 다소 외설적이다. 운수가 좋은 사람은 늘 좋은 일만 생긴다는 뜻이다. "시집 영 두 번 갔더니 요강 시울에 선 두른다"라는 속담도 있다.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무슨 일을 여러 번 당하면, 요령이 터서 좋은 결과가 있는 경우도 있다는 말로 쓰인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요강을 읊은 시>
김삿갓으로 더 유명한 김병연이란 시인이 요강의 덕을 예찬한 시가 있어 번역해 적어 본다.
"요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