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현의 과학태교6 아빠의 기분이 아기 심장으로 연결된다.

  • 등록 2025.09.22 09: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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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 임신과 태교가 엄마만의 몫일까? 놀랍게도 아빠의 표정 하나, 한숨 소리 하나가 아기에게도 전해진다. 임신부의 뇌는 배우자의 감정에 유난히 민감해져서다. 공감 회로가 활짝 켜지면서 남편의 퇴근 후 표정, 대화의 톤까지 그대로 흡수한다. 그러니 아빠가 매일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면, 엄마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도 함께 치솟는다.

 

실제로 독일의 한 연구에서는 아빠와 엄마의 코르티솔 분비 패턴이 서로 맞물려(linkage) 있을수록 아이의 인지 기능 발달이 더 좋아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반대로 아빠가 늘 불안하고 엄마와 생리적 공감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이의 발달 지표가 낮아지는 경향도 확인됐다. 실험 결과는 놀랍다. 부부 싸움이 잦은 가정의 태아는 심박동이 더 불규칙해지는 현상이 보고됐다.

 

세상 빛을 보기도 전에 부모의 갈등을 ‘심장으로 듣는다’는 얘기다. 더구나 임신 중 배우자의 무관심은 산모를 외롭게 만들고, 그 외로움이 우울감으로 번지면 결국 아기에게도 부정적인 흔적을 남긴다. 최근 산모의 정서적 고통이 태아 뇌 영상에서 해마와 소뇌 발달 지연, 백질 연결성 변화와 연관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백질은 뇌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고속도로 역할을 하는 신경섬유 다발이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오늘 힘들지 않았어?”라는 한마디, 산책길에 건네는 따뜻한 손, 함께 차려 먹는 저녁 밥상이 바로 태아의 환경을 바꾼다. 산모의 자율신경계가 안정되고 호흡이 고르게 되면, 태아의 심박동도 차분해진다. 남편이 임신 과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록 산모의 불안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과학이 증명하는 태교는 고가의 클래식 음악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건네는 다정한 대화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홀로 여러 자식을 키워내던 전․근대 여성들은 남편의 부재(不在)가 태교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할까? 그렇지 않다. 그때 그 시절에는 집안일이 살인적인 노동을 방불케 했다. 빨래는 개울가에서 방망이로 두드려야 했고, 밥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했다. 아이 울음소리에 달래다 말고 장작을 패고, 또 밭에 나가 김을 매야 했을 것이다.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다 보면 ‘외롭다’는 감정을 곱씹을 겨를조차 없었다. 남편이 집에 있든 없든, 생존의 리듬이 감정을 덮어버렸다고 봐야 한다.

 

오늘날의 부부는 다르다. 핵가족이 보편화되고, 세탁기와 밥솥, 로봇청소기까지 등장하면서 집안일의 강도는 줄었다. 육체는 조금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외로워지기 쉬워졌다. 게다가 스마트폰 알림, 실시간 메시지, SNS 피드 같은 디지털 자극은 산모의 정서를 더 예민하게 만들고, 배우자의 반응 하나하나가 큰 파도처럼 다가온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아빠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단순히 경제적 부양을 넘어, 산모의 정서적 안정과 행복을 위한 적극적인 파트너십이 요구되는 시대다. 아빠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지식을 쌓고, 산모의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이해하며 적극적으로 소통할 때, 산모는 비로소 외로움을 덜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태담을 나누거나, 태아에게 책을 읽어주는 등의 활동은 아빠와 태아의 유대감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산모에게도 큰 위안을 준다. 이러한 아빠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은 엄마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이는 곧 태아의 건강한 성장으로 이어진다. 태아는 엄마의 감정을 통해 아빠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태아기에 ‘아빠의 목소리’와 ‘아빠의 손길’을 경험한 아이는 세상 밖에서도 그 안정감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태아가 필요로 하는 건 비싼 태교 프로그램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짓는 평범한 웃음과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비롯된다. 아빠의 기분이 엄마의 마음을 흔들고, 결국 아기의 세상을 결정한다는 사실. 그 무게를 안다면 임신한 아내에게 늘 따듯한 감정을 전달해야 하지 않을까.

박숙현 기자 yonginc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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