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열ㅣ구자운

2022.07.18 09:33:23

구열

     구자운

 

그건

어떤 깎고 닦은 돌 면상에 구열진 금이었다

어떤 것은 서로 엉글려서 설형으로 헐고

어떤 것은 아련히 흐름으로 계집의 나체를 그어놨다

그리고 어떤 것은 천천히 구을려

또 나체의 아랫도리를 풀이파리처럼 서성였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러한 구열진 금의 아스러움이

-그렇다 이건 우발인지 모르지만

내 늙어 앙상한 뼈다귀에도 서걱이어

때로 나로 하여금

허황한 꿈 속에서 황홀히 젖게 함이 아니런가? 고

 

구자운(1926~1972)은 일제강점기에 부산 중구 부용동에서 출생했다. 1955년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지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소아마비의 몸으로 평생 시를 쓰며 살았다. 순수서정으로 돌아가려는 시운동을 전개했다.

「구열」은 거북이 등의 균열을 시로 향상화한 작품이다. 돌면상에 그어진 금이었거나 어떤 것은 서로 엉클어진 쐐기 모양의 기둥으로 헐고 어떤 것은 계집의 나체모양을 그어놓았으며 어떤 것은 나체의 아랫도리를 풀이파리처럼 서성이고 있다. 나는 생각에 잠긴다. 이건 우발적이기는 하지만 내 늙어 앙상한 뼈다귀에도 서걱이어서 허황한 꿈속에 젖게 하는 것이다. 『한국전후문제시집』 중에서. 김윤배/시인

김윤배 기자 poet0120@gmail.com
Copyright @2009 용인신문사 Corp.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용인신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지삼로 590번길(CMC빌딩 307호) |사업자등록번호 : 135-81-21348 등록일자 : 1992년 12월 3일 | 발행인/편집인 : 김종경 | 대표전화 : 031-336-3133 | 팩스 : 031-336-3132 등록번호:경기,아51360 | 등록연월일:2016년 2월 12일 | 제호:용인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박기현 | ISSN : 2636-0152 Copyright ⓒ 2009 용인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ongin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