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졸업과 입학 시즌이다. 중고등학교 예비 입학생을 위한 교복 나눔 행사장도 가는 곳마다 북새통이다. 새벽부터 행사장 입장 번호표를 받기 위해 줄을 선 학부모와 학생들. 그중에는 재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교복을 물려주던 시절, 그땐 그저 절약과 미덕으로만 생각했으나 이젠 분위기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용인지역에서도 교복 나눔 행사장이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것은 단돈 1000~3000원이면 재활용 교복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다 경쟁의 원인은 새 교복 값이 너무 비싼 탓이 크다. 선배들이 깨끗하게 입은 교복을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요즘 교복은 품질이 좋아서 오래 입을 수 있다. 유명 업체가 고가의 브랜드 교복을 만들기 때문에 낡아서 못 입는 경우는 별로 없다. 아이들 몸집이 커져서 옷이 작은 경우를 제외하면 교복이야말로 유행과 상관없는 전천후 제복인 셈이다. 게다가 대물림까지 가능하고, 경제적 부담이 없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국가경제는 점점 어렵다고 하는데, 교복 값은 10%를 전후해 올랐다. 그래서 공동구매를 해보지만, 이것저것 포함하면 결국 40~50만원 수준. 웬만한 중산층이하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비싸다.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인 나라에서 왜 교복 문제만큼은 이토록 관대한지 모를 일이다.
지난해까지 만해도 점심 무상급식 문제를 놓고 나라가 뒤집힐 듯 했는데, 요즘엔 총선 때문인지 무상급식을 반대하던 정당의 인사들이 아침밥까지 주자고 한다. 정말 코미디보다 재밌는 곳이 정치판이란 생각이 든다. 이 또한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현상때문에 발생된 것이 틀림없지만, 정치이해 관계에 따라 복지 포퓰리즘으로 매도해서도 안된다.
최근엔 청소년들이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에 열광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유명브랜드 옷값에 따라 또래의 서열까지 정해진다는 불편한 진실들. 이미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천박한 한국 자본주의의 모습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언제 부터 우리나라가 이렇게 변했는지, 누구를 탓해야 할지 가슴이 먹먹하다.
어디 그 뿐인가. 고급 옷을 입고 다니기 위해서는 일진 등 교내 폭력학생들에게 옷을 빼앗길 것까지 감수해야 한단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다. 80년대, 기자는 까까머리에 까만 교복을 입고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세대다. 옷이라곤 동복과 하복 각 한 벌씩, 그리고 교련복 한벌이 고작이었다. 교복세대였지만, 한때 교복 자율화도 경험했다. 그럼에도 최근엔 작금의 사태가 그 시절보다 더 암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386세대는 이제 경제 불황 속에서도 국가 발전과 자녀 양육의 부담까지 고스란히 떠안은 중년층이 됐다.
시대의 변혁기와 극단의 양극화를 경험한 유일한 세대. 그리고 집값 하락에 따른 하우스 푸어(집 가진 빈곤층)라는 붕괴된 중산층의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교복 나눔을 통해 본 386세대의 모습은 우울 그 자체다. 교복 나눔이라는 일단의 행사에서도 보여지듯이 우리 사회는 전반에 걸쳐 양극화의 첨단을 걷고 있는 듯하다. 여전히 높은 물가와 가계 부채….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을 통해서라도 겨울 한파가 물러가고, 따듯한 봄날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