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논란이 정치와 이념의 대결로 변질돼 한판 승부를 앞두고 있다. 좀 더 논의하고 설득하면 합의 될 수 있는 것을 무려 182억 원의 혈세를 들여 주민투표에 쏟아 붓는 꼴이다.
원래 주민투표는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결정 사항’에 대해 묻는 제도다.
그런데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 민주당간 무상급식 실시 범위 협상의 실패 때문에 주민투표까지 하게됐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여야 모두 정치력의 부재와 정당공천제의 폐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번 ‘8·24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매우 중요하다. 결과에 따라 대한민국 복지정책의 향방이 좌지우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이번 주민투표가 무상급식 찬·반 투표가 아닌 무상급식 지원 범위 투표라는 것. 선택의 첫 번째 안은 ‘초·중·고교 소득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안’이고, 두 번째는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2011년), 중학교(2012년)에서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안’이다.
과연 800만 명에 달하는 서울시 유권자들은 단계적 무상급식안과 전면 무상급식안 중 어떤 안을 선택할까.
이미 무상급식을 시행중인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많은지라 서울시의 주민투표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나의 함정은 투표율 33.3%를 못 넘기면 투표함을 영원히 열 수 없다는 것. 주민투표법상 총 유권자 838만 7281명 중 279만5761명 이상이 투표를 해야만 투표함을 열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표율 33.3%라는 조건에 미달되면 개표 자체가 불가능하다.
개표를 못할 경우엔 초등학교 4개 학년 전면 무상급식은 현행대로 계속된다. 사실상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것이다.
반대로, 개표를 했을 때 단계적 무상급식안 지지율이 높을 경우엔 시의회의 친환경무상급식 조례안이 자동 폐기된다.
그리고 서울시 초·중·고교 소득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무상급식이 단계적으로 실시된다. 물론 전면 무상급식안에 대한 찬성 비율이 높으면 전면 무상급식이 실시된다.
오세훈 시장은 이번 주민투표에 정치생명을 걸어둔 분위기다. 만약 투표율이 떨어져 투표함조차 열지 못한다면 상처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표율 제고와 단계적 무상급식 지지층 결집을 위해 차기 대선출마포기 선언 등 막판 승부수를 띄우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내년엔 4월 국회의원 선거와 12월 대통령선거까지 있다. 지금처럼 ‘복지논쟁’이 핫 이슈일 게 뻔하다.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양대 선거의 전초전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민주당은 무상급식·보육·의료에 반값등록금 등 이른바 ‘3+1’ 무상 복지시리즈를 내걸고 있다.
주민투표에서 질 경우엔 무책임한 복지 포퓰리즘만 양산한다는 역풍을 감내해야 한다. 물론 개표를 못하거나 전면 무상급식안이 채택될 경우엔 한나라당이 내년 양대 선거에서 곤욕을 치룰 수밖에 없다.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무상급식으로 촉발된 보편적 복지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문제는 보편적 복지마저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결로 변질되고 있다는 데 있다.
제발 조금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토론문화가 형성되길 바란다. 아울러 정치권부터 각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