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십 년 가르치심이 어머니가 열 달 길러 주신만 못하고, 어머니가 열 달 길러 주심은 아버지가 하루 낳아 주심만 못하다”
조선시대 여성 실학자 <사주당이씨(師朱堂李氏)>가 저술한 『태교신기(胎敎新記)』 1장의 한 부분이다. 사주당은『문통(文通)』·『물명고(物名考)』·『언문지(諺文志)』등 방대한 저술을 남긴 조선의 대 실학자 방편자(方便子) 유희(柳僖, 1773~1837)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유희는 사주당의 가르침에 따라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 용인에 머물면서 학문 탐구에만 몰두했다. 유교 경전을 비롯한 박물학, 문자론, 시문집 관련 저술 외에도 역사·음악·수학·농학·기상학·의약학 등 다양하다. 그는 정주학(程朱學)을 근본으로 삼았으나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철학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연구하고 실천한 실학자이며, 박물학자요, 언문학자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유희가 학문적으로도 걸출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사주당이란 본디 “주자를 스승으로 삼았다”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사주당은 『태교신기』에서 설파했듯, 조선시대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남녀, 부부, 가족 간의 문제를 화합과 상대에 대한 배려로 생각한 진보주의자였다. 그녀는 인간의 교육은 태아교육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여성에 대한 체계적인 태교 교육실천화 방안까지 저서로 집대성했다.
“아비가 낳는 것과 어미가 기르는 것, 스승이 가르치는 세 가지가 합하여야 완전한 사람을 만들 수 있는데, 최선의 방법은 의원이 병자를 치료함과 같아서 명의는 병들기 전에 치료하는지라 생육도 역시 아기 낳기 전에 가르칠지니…”
사주당은 단순히 부모의 태교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은 물론 사회적 태교의 중요성까지 일깨웠다. 성리학적 식견과 사유를 바탕으로 자신의 체험까지 고스란히 게재했던 『태교신기』. 감히 기자는 『태교신기』야 말로 인성의 형성과 가르침이라는 철학적 의미 부여는 물론 현대적 의미의 과학까지 겸비한 인문학의 결정본이라고 본다.
그런데 왜 이 같이 위대한 태교본을 국가차원에서 널리 보급하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미 100여 년 전 일본은 사주당 이씨의 『태교신기』를 번역해 자국에 보급했다. 외국인들까지 알아보았던 소중한 기록문화자산을 대책 없이 방치해왔던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은 OECD국가 중 출산율이 꼴찌 수준이라고 한다. 이젠 저출산 문제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바로 이때 『태교신기』를 좀 더 알려야 한다.
핵가족 시대를 맞아 태교에 대한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태교신기』의 우월성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태교신기』는 비단 젊은 부부들만 알아서 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밝혔듯이 태교는 가족과 사회적 합의의 형태로 발전되어야 한다.
유대인들이 일찍 태교의 중요성을 깨닫고, 전통문화처럼 계승 발전시켜 세계인의 중심에 섰듯이 이젠 우리나라도 『태교신기』를 국가경쟁력의 원본으로 삼아야 한다.
이제 용인신문사를 중심으로 『이사주당 기념사업회』가 공식 창립됐다. 사주당은 조선시대 실학여성으로 이미 학계에서는 크게 부각됐다. 경기도 역시 오래 전부터 심포지엄 등을 통해 집중 조명해왔다. 하지만 정작 용인지역에서는 그동안 제대로 된 선양사업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 이젠 기념사업회가 앞장서서 ’태교는 인문학이다’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고 한다. 늦게나마 창립된 이사주당 기념사업회에 축하와 기대를 함께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