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膳物)과 뇌물(賂物)의 차이는 무엇일까?

  • 등록 2009.11.23 17: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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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과 뇌물의 경계가 자로 줄을 긋듯이 명백하다면 그것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양쪽 모두 불편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것이 선물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주고받으면 되고, 뇌물일 경우에는 정중하게 거절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사에서, 특히 인지상정(人之常情)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사회에서는 선물과 뇌물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

형법에 따르면 뇌물죄는 일반인이 아닌 공무원이나 중재인에게만 적용되는 신분범죄이다. 즉 공무원이나 중재인이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요구하거나 받을 경우에 적용되는 죄이다. 물론 뇌물죄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법리적으로 다소 까다로운 조건이 수반된다.

이와 관련, 이명박 정부들어 국가청렴위원회,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 등 3개 기관이 통합돼 탄생한 국민권익위원회가 올 초 개정한 '공무원행동강령'에는 '선물'과 '향응'의 개념이 잘 정리돼 있다.

공무원행동강령 제2조 ③항에는 "<선물>이란 대가 없이(대가가 시장가격 또는 거래관행과 비교하여 현저하게 낮은 경우를 포함한다) 제공되는 물품 또는 유가증권, 숙박권, 회원권, 입장권,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돼 있고 ④항에는 "<향응>이란 음식물ㆍ골프 등의 접대 또는 교통ㆍ숙박 등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고 적시돼 있다. 여기에 더하여 제14조 ①항에서는 "공무원은 직무관련자로부터 금전, 부동산, 선물 또는 향응(이하 "금품등"이라 한다)을 받아서는 아니 된다."고 더욱 엄격한 조항을 덧붙이고 있다. 다만 '통상적인 관례의 범위에서 제공되는 음식물 또는 편의' 등은 예외로 하고 있는데 현재는 이 한도액이 3만원이다. 이를 법조문대로 해석하자면 공무원은 3만원 이내의 식사대접 등을 제외하고는 일체의 선물을 받을 수 없는 셈이다. 정말 추상같은 규정이다.

선물과 뇌물의 한계에 대해선 동서고금에도 많은 논쟁이 있었다.

역사인류학자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는 《선물의 역사 The Gift in Sixteenth-Century France》라는 방대한 역저에서 중세 서구사회의 선물에 얽힌 예화를 흥미롭게 소개한다. 대부분의 풍속사학자들이 시장경제의 발달과 더불어 선물의 의미가 쇠퇴해간다고 해석한 데 반해 데이비스는 선물 양식의 독특한 역동성에 주목했다.

선물이란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경계선을 확인하고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지적한 그는 다양한 사례를 분석한 끝에 두 가지의 명쾌한 결론을 내린다. 선물에는 "고도의 전략이 숨어있고, 의미없는 선물은 없다"라고.

마찬가지로 법조계 주변에선 "대가성 없는 금품은 없다"는 말이 회자된다. 즉 공짜 선물이란 없다는 것이다. 수사관들은 이를 "소금 먹으면 물을 들이키게 돼있다"는 말로 비유한다. 소금(뇌물)을 먹으면 물을 들이키듯 반드시 그에 대한 보상을 해주려 한다는 것이다. 소금을 준 측에서도 상대방이 물을 들이키길 기대하는 것도 당연하다.

최근 김준규 검찰총장이 검찰을 담당하는 언론사 법조팀장들과의 회식자리에서 추첨을 통해 50만원씩 모두 500만원을 건넨 사건이 불거졌다. 김 총장은 사건이 확대되자 “분위길 띄우기 위해 건넨 돈봉투지 촌지는 아니다”고 해명했다. 50만원이란 돈은 일반인에게 거지(巨志)일 터이니 굳이 촌지(寸志)가 아니라는 그의 궁색한 궤변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영국의 기업윤리연구소(IBE)가 재미있게 정의한 선물과 뇌물의 3가지 차이점만은 이번 기회에 공직자들이 알고 넘어갔으면 한다.

IBE 가라사대 첫째 ‘물건을 받고 잠을 잘 못 이루면 뇌물, 잘 자면 선물’. 둘째 ‘언론에 발표되면 문제가 되는 것은 뇌물, 문제가 안 되는 것은 선물’,. 셋째 ‘자리를 바꾸면 못 받는 것은 뇌물, 바꾸어도 받을 수 있는 것은 선물’이다.

용인신문 기자 webmaster@yongi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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