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 카의 명제는 묵직하다. 여기에 조금 더 투박한 목소리를 보태고 싶다. “역사는 곧 살아있는 교훈”이라고 말이다. 역사는 박제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비어 있는 과거의 행간을 현재의 시선으로 메워 나가는 능동적인 작업이다. 기록이란 결국 인간이 쏟아낸 욕망의 흔적을 갈무리하는 과정이며, 우리는 그 속에서 오늘의 이정표를 찾는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 오나라 부차는 초심을 잃고 권력의 단맛에 취해 자만하다가, 끝내 자신이 살려준 월나라 구천에게 멸망했다. 이미 조짐은 있었다. 부차의 아버지 합려는 그를 태자로 삼기 전, 아들을 가리켜 “우둔하고 착하지도 않다(愚而不善)”라고 평한 바 있다. 그런데도 부차는 자신을 태자로 만들고 국가에 헌신했던 오자서를 멀리하고, 달콤한 언변으로 현혹하는 백비를 중용했다. 초나라 망명객 출신 백비는 관계 관리에 탁월했다. 그는 오자서의 입지를 시기하여 모함했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았다. 부차 곁에는 전략가 손무도 있었으나, 부차는 구천을 제압한 것이 오로지 자기 능력이라 과신했다. 원칙을 중시하는 오자서나 병법의 대가 손무보다 제 입맛에 맞는 백비를 곁에
용인신문 | 한때 영화관은 사랑을 배우는 곳이었다. 1980~90년대 스크린에는 늘 애틋한 사랑이 있었다. 멜로물은 물론 액션 영화조차 사랑이 빠지면 성립되지 않았다. 첫사랑을 꿈꾸게 했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삶을 동경하게 했으며, 사랑 하나로 세상을 견디는 힘이 영화 속에 있었다. 그 시절 젊은이들의 로망은 세속적인 성공보다 사랑이었다. 하지만 지금 스크린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요즘 화제가 되는 영화와 드라마를 떠올려 보라. 마약, 도박, 사기, 조직 폭력, 복수…. 그 중심에는 예외 없이 살인이 있다. 평범한 죽음이 아니라 연쇄살인, 사이코패스, 시체 훼손 같은 잔혹범죄가 흥행 공식처럼 반복된다. 재미와 몰입감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끔찍함에 대한 ‘익숙함’이다. 처음엔 눈을 돌렸던 장면이 두 번째엔 덜 충격적이고, 다섯 번째엔 아무 감정 없이 지나간다. 반복되는 자극에 적응하는 심리학적 ‘둔감화’ 현상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사람의 죽음을 비극이 아닌 오락으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현실은 어떠한가. 최근 우리 사회는 상상조차 어렵던 흉악범죄를 잇달아 겪었다. 도심 흉기 난동은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남겼고, 안전지대라 믿
용인신문 | 올여름 유럽은 또다시 폭염에 신음하고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 이탈리아는 40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이어지고, 영국마저 "에어컨은 이제 사치품이 아니라 생존 장비"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정작 유럽 사람들을 가장 놀라게 하는 것은 폭염이 아니다. 에어컨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에어컨은 너무도 익숙한 가전제품이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며칠 안에 설치가 끝난다. 벽걸이든 스탠드형이든 원하는 제품을 고르고, 설치 기사와 날짜만 맞추면 된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시원한 여름을 맞을 수 있다. 에어컨을 사는 일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다. 하지만 유럽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수백 년 된 건물은 외벽을 훼손할 수 없어 실외기 설치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고, 문화재 보호 규정 때문에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곳도 적지 않다. 건물의 전기 용량을 늘려야 하고, 배관을 새로 깔아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건물 전체의 설비를 손봐야 한다. 그래서 오래된 건물이나 역사적 건축물에서는 에어컨 한 대를 설치하는 데 우리 돈으로 수천만 원이 드는 사례도 나온다. 한국에서는 에어컨 가격을 고민하지만, 유럽에서는 설치 자체를 고민하는 것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용인신문 |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궁금한 것이 생기면 습관처럼 포털 검색창을 열었다.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 수많은 링크를 클릭하고, 광고를 지나치고, 여러 페이지를 비교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포털보다 먼저 생성형 AI를 연다. 검색어 대신 질문을 입력하고, 몇 초 뒤 정리된 답을 받아본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생성형 AI의 가장 큰 변화는 단순히 일을 빨리 처리해 준다는 데 있지 않다. 우리의 시간을 되돌려준다는 점에 있다. 보고서 초안은 몇 분 만에 완성되고, 긴 논문은 핵심만 추려 읽을 수 있으며, 복잡한 엑셀 함수나 프로그래밍 코드도 즉시 해결책을 얻는다. 글을 쓰는 사람은 표현을 다듬고, 기획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학생은 어려운 개념을 쉽게 이해한다. 과거에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던 일들이 이제는 누구나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 되고 있다. AI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능력을 몇 배로 확장시키는 도구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AI는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든다. 한 번의 질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관점은 없을까”,
용인신문 | 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홀로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가 사회 전반에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고독사 사망자는 2021년 3378명에서 2025년 6000여 명으로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50·60대 장노년층이 전체 사망자의 6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고독사가 일부 취약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은퇴를 전후한 시니어 세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구조적인 사회 위험으로 자리 잡았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고독사가 야기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치명적인 문제는 사망 후 발생하는 막대한 경제적 비용이다. 발견이 늦어지면 시신 부패로 주거 환경이 훼손된다. 일반 청소로는 해결이 안되어 전문적인 특수청소, 악취 제거, 감염 예방 방역, 유품 정리, 특수 폐기물 처리 및 주거지 전면 복구 작업이 필수적이다. 장례 절차까지 포함하면 건당 최소 1000만 원 이상의 사후 처리비가 발생한다. 현재 이 비용 상당수는 무연고 사망자 지원 등을 통해 지자체 예산, 즉 국민의 혈세로 충당된다. 고독사가 늘어날수록 세금 부담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 구조다. 반면, 우리보다 20여
용인신문 | 지난 6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지켜보며 용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뛰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2000조 원이 넘는 국내 투자 계획을 내놓았고, 이 중 평택과 용인의 기존 반도체 클러스터 육성에만2030조 원이 투입된다.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 의지가 재확인되면서 ‘용인 르네상스’는 이제 확고한 현실이 되었다. 용인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첨단산업의 심장부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하지만 용인에서 도시 공간을 설계하는 건축가이자 기업인, 그리고 엄마로서 이 화려한 청사진 이면을 차분히 짚어보고 싶다. 저 거대한 반도체 공장들이 모두 지어지고 난 뒤, 우리 아이들은 용인에 머물며 일하게 될까. 조금 의외일 수 있지만, 반도체 공장의 어마어마한 규모가 곧장 청년 일자리의 다양성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현대의 초미세 반도체 공정은 극한의 자동화가 이루어져 소수의 전문 인력이 통제하는 구조다. 막대한 자본과 전력, 용수가 투입되지만, 동네 구석구석에 활기를 더해 줄 다채로운 일자리는 시민들의 기대만큼 풍성하지 않을 수 있다. 가까운 성남 판교를 보면 힌트가 있다. 판교테크노밸리의 8
용인신문 |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 가장 큰 이슈는 용인지역 지방자치 사상 최초의 ‘재선 시장 탄생’이다. 국민의힘 이상일 후보는 50.78%의 득표율로 과반을 확보하며 당선을 확정 지었고, 더불어민주당 현근택 후보는 47.76%를 기록하며 1만 7117표 차로 석패했다. 개혁신당 송창훈 후보는 1.46%를 얻는 데 그쳤다. 이번 선거에서 용인의 표심은 매우 정밀하게 작동했다. 도지사와 도교육감을 민주당과 진보 성향 후보가 차지했고, 용인 지역구 도의원 선거 역시 11개 선거구 중 10곳을 민주당이 싹쓸이하며 압승했다. 이처럼 거센 여풍(與風) 속에서도 기초단체장인 용인시장 자리만큼은 국민의힘 소속 이상일 현 시장에게 다시 기회를 주었다. 이 교차투표는 민주당의 자만과 오만에 대한 유권자들의 예리한 심판이다. 용인시정만큼은 여당인 민주당의 일방통행식 독주를 견제하려는 유권자들의 전략이 현실화한 모습이다. 이런 현상은 서울시장 선거의 흐름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이 5선에 성공한 배경 역시, 오 시장이 특출하게 잘해서라기보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걸고 균형을 맞추려는 서울시민의 심판
용인신문 | 6.3 지방선거의 막이 올랐다. 지난 29일부터 이틀간 전국적으로 사전투표가 진행된 가운데, 필자 역시 취재차 방문한 처인구 역북동 행정복지센터 사전투표소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이른 아침부터 일반 유권자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군부대가 많은 지역 특성상 관외 사전투표를 하려는 국군 장병들의 긴 줄도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주권을 행사하고 투표소를 나서며, 민주주의의 축제라는 당위성 이면에 가려진 현행 선거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가장 단적인 예가 선거일 직전 일주일간 적용되는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규정이다. 여론의 왜곡을 방지하겠다는 본래의 법적 취지와 달리, 이 규정은 이른바 ‘깜깜이 선거’를 유발하여 유권자의 올바른 판단을 제약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정치권이 이를 유지하는 배경에는 거대 양당의 기득권 보호가 자리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선거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된 다수의 선진국에서 이러한 규제를 두지 않는 점을 감안할 때, 정작 가장 중요한 시기에 유권자를 정치적 소외자로 전락시키는 제도는 조속히 재고되어야 한다. 유권자에게 요구되는 정보의 비대칭성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이번 선거에서
용인신문 | 문학이 자본의 논리에 함몰되지 않고 시대의 진실을 노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중앙 집중화된 문단 권력 아래서 ‘지역’이라는 이름을 걸고 30년 동안 창작의 불을 밝혀온다는 것은 단순한 열정 이상의 결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따라서 2026년 5월,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용인문학회의 궤적은 변방의 소외를 극복하고 한국 지역 문학의 새로운 전형을 창출해온 실천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용인문학회의 가장 독보적인 성과는 종합 문예지 '용인문학'의 발행이다. 1997년 창간호를 펴낸 이후, 2026년 상반기 제46호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의 결호 없이 현재는 반연간지로 발행 중인 이 잡지는 그 자체로 용인 현대사의 문학적 아카이브다. 전국의 수많은 자생 문학 단체가 부침을 겪으며 사라지는 척박한 여건 속에서도 '용인문학'은 굳건한 생명력을 증명했다. 2022년부터 시작된 인터넷 서점 전국 유통은 지역 문학이 더 이상 ‘우리끼리의 잔치’에 머물지 않고 대중적 평가의 장으로 나아갔음을 의미한다. 전문 창작 집단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동력은 교육과 발굴의 선순환에 있다. 2007년 개설된 시 창작반은 김윤배 시인을 책임교수로 체계적인 강좌를 이어오
용인신문 |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서방 세계의 탐욕에 제동이 걸린 시대사적 사건이었다. 이란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질서를 규정해온 미국의 몰락을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목격하게 된 대사건이다. 현재 진행형인 이 두 개의 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러한 시기에 한반도 정세는 예측 불허 상태에 있다. 북한은 두 개의 국가를 헌법에 규정하고 국무위원장을 국가 수반으로 명시하는 한편, 영토 조항을 조선의 행정력이 미치는 범위로 한정했다. 현행 제6공화국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5월 7일 국회는 헌법 전문 수정과 계엄 요건 강화,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부분 개헌안을 본회의에 상정했으나 국민의힘의 표결 불참으로 투표 불성립되었다. 따라서 정부와 민주당은 헌법 부분 개정이 아닌 전면 개정을 전제로 지방선거가 끝나는 즉시 제7공화국 헌법 제정에 착수해야 한다. 북한은 이미 두 개의 국가를 골자로 하는 헌법을 제정하고 통일 조항도 삭제했다. 이제 좋든 싫든 우리가 응답할 차례다. 전면 개헌은 민감한 사안으로 여야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만, 개헌은 미룬다고 문제
용인신문 | 최근 이동·남사읍 일대에 조성되는 국가 첨단 전략산업 특화단지, 이른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부지 내 유적 보존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뜨겁다. 특히 조선 초기부터 자리를 지켜온 의령남씨(宜寧南氏) 종중 묘역의 이전과 발굴 조사는 단순한 문중의 일을 넘어, 우리 용인이 마주한 ‘문화적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용인은 지난 30여 년간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었다. 수지, 기흥을 거쳐 이제는 처인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택지 개발과 산업단지 조성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유구와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소중한 역사적 자산들 중 용인에 온전히 뿌리 내린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수장고와 전시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 땅에서 출토된 국보급 유물들은 국립박물관이나 대학 박물관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를 두고 학계와 시민들 사이에서 ‘유물의 망명’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체성은 땅의 기억에서 비롯되거늘, 기억의 파편들을 외지에 맡겨둔 채 110만 대도시의 자긍심을 논하기엔 무리가 있다. 현재 기흥구에 위치한 용인시박물관이 있지만, 그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본래 특정
용인신문 | 학사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시험에는 신입학과 편입학이 있다. 신입학은 정시와 수시를 통해 입학할 수 있고, 편입학은 편입학 시험을 통해 입학할 수 있다. 편입학에는 일반편입학과 학사편입학이 있다. 일반편입학 시험은 4년제 대학 2년 이상 수료했거나 그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지원할 수 있고. 학사편입학은 학사학위를 취득했거나 그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지원할 수 있다. 대학편입학 시험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 때 시행된 경성제국대학의 편입학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에 선과생으로 편입학하여 졸업한 신진순은 북한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장편소설 『산천의 새 역사』‧ 『남녘마을 아이들』, 시집 『은혜로운 품』 등을 출간했다. 8·15해방 이후 대학편입학 시험에 합격하여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저명한 문인으로 소설가 조세희, 소설가 천승세, 소설가 김원일, 문인이자 연세대 국문과 교수였던 이가원, 시인이자 고려대 영문과 교수였던 김종길 등이 있다. 대학편입학 시험을 거쳐 학부 과정을 마치고 대법관이 된 인물도 있고, 서울특별시장이 된 인물도 있다. 대학교 교수가 된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