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난임 부르는 자가면역질환의 비밀 우리 몸의 면역세포는 평생 적을 찾아 싸운다. 세균이 침입하면 공격하고,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제거한다. 암세포가 생기면 이를 감시하고 없애는 것도 면역의 역할이다. 그런데 임신은 이 원칙이 유일하게 뒤집히는 순간이다. 엄마의 몸속으로 들어온 배아는 절반은 엄마의 유전자지만, 나머지 절반은 아버지의 유전자를 가진 '외부 세포'다. 원칙대로라면 면역세포는 이를 적으로 인식해 제거해야 한다. 건강한 임신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면역은 공격을 멈추고 배아를 품는다. 태반이 자라도록 돕고, 혈관을 만들며, 새로운 생명이 자궁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길을 터준다. 의학에서는 이를 '면역관용(immune tolerance)'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생식의학자들은 "수정은 정자와 난자가 하지만, 임신은 면역이 허락해야 완성된다"고 말한다. 바로 이 면역관용이 무너질 때 난임이 시작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원인이 자가면역질환이다. 자가면역질환은 우리 몸을 지켜야 할 면역체계가 세균이나 바이러스 대신 자신의 세포를 적으로 잘못 인식해 공격하는 질환이다. 대표적으로 하시모토 갑상선염, 전신홍반루푸스, 류마티스관절염,
용인신문 | "살만 빼면 임신이 된다던데 정말인가요?" 난임여성, 특히 살찐 난임여성들이 주로 묻는 질문이다. 물론 모든 비만 여성이 임신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반대로 마른 여성도 난임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는 고도비만이 임신 성공률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위험인자라는 점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최근 생식의학에서는 비만을 단순한 체형의 문제가 아니라 생식 기능을 떨어뜨리는 대사질환으로 바라본다. 지방조직은 단순히 에너지를 저장하는 공간이 아니라 각종 호르몬과 염증물질을 분비하는 거대한 내분비기관이기 때문이다. 체지방이 과도하게 증가하면 호르몬 균형이 무너지고 난자의 질과 자궁 환경까지 영향을 받는다. 결국 임신이 되는 과정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배란 장애다. 지방이 많아질수록 여성호르몬의 균형이 깨지고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한다. 여기에 남성호르몬 분비까지 늘어나면 배란이 불규칙해지거나 아예 멈추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다낭성난소증후군(PCOS)을 가진 여성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생리가 불규칙하거나 몇 달씩 생리가 없는 여성이라면 배란 이상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연구
용인신문 | "자궁내막은 8㎜가 넘었습니다." 시험관아기(IVF) 시술을 앞둔 여성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실제 난임 진료실에서는 오랫동안 '자궁내막 두께 8㎜'가 착상을 위한 심리적 기준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최근 세계 생식의학계에서는 이 익숙한 기준이 흔들리고 있다. 자궁내막이 몇 ㎜인지보다 그 안의 혈류가 얼마나 원활한지, 만성염증은 없는지, 배아를 받아들일 준비가 제대로 돼 있는지 등 이른바 '자궁내막의 질'이 착상을 좌우한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난임 치료의 관심이 '두께'에서 '기능'으로, '숫자'에서 '환경'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생식의학자들은 자궁내막을 흔히 '배아가 처음 머무는 집'에 비유한다. 집이 넓다고 반드시 살기 좋은 것은 아니다. 벽에 금이 가고, 수도가 막히고, 실내 공기가 나쁘다면 누구도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자궁도 마찬가지다. 초음파로 측정하는 자궁내막 두께는 집의 크기를 보여줄 뿐이다. 착상을 결정하는 것은 집 안의 환경이다. 혈관이 충분히 발달해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지, 면역세포가 배아를 적으로 인식하지 않는지, 염증으로 조직이 손상되지 않았는지, 호르몬 신호
용인신문 |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첫 미팅장소', 나팔관의 비밀 배란도 잘 되고 생리도 규칙적이다. 난소 기능도 정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도 임신은 좀처럼 되지 않는다. 난임 진료실에서 이런 여성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있다. "나팔관 검사를 한번 해보시죠." 많은 사람들은 나팔관을 단순히 난자가 지나가는 통로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생식의학에서는 전혀 다르게 본다. 전문가들은 "나팔관은 단순한 관(pipe)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첫 번째 무대"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정자와 난자가 처음 만나 서로를 선택하는 '미팅 장소'다. 실제로 자연임신은 대부분 나팔관의 가장 넓은 부위인 팽대부(ampulla)에서 시작된다. 수억 마리의 정자 가운데 살아남은 일부가 이곳까지 도착하고, 배란된 난자가 이곳으로 이동하면서 두 세포는 처음 만난다. 수정은 바로 이 '미팅 장소'에서 이뤄진다. 이후 수정란은 며칠 동안 나팔관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면서 세포분열을 거듭한 뒤 자궁에 도착해 착상한다. 움직이는 것은 난자가 아니라 '나팔관' 많은 사람이 난자가 스스로 자궁을 향해 이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나팔관 안쪽에는 섬모(cilia)라
용인신문 | 비가 며칠째 이어진다면? 창밖은 온통 잿빛이고, 아침인데도 몸은 밤처럼 무거워질 것이다. 괜히 짜증이 나고, 이유 없이 눈물이 맺힌다. "비가 와서 그래."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의학은 이 변화를 단순한 감상으로 보지 않는다. 장마는 기분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뇌와 호르몬, 수면, 스트레스, 그리고 생식 기능까지 연쇄적으로 흔들 수 있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특히 임신을 준비하는 부부에게 장마는 단순한 계절이 아니다. 난임 치료를 받는 여성들은 장마철이 되면 "이번 달은 유난히 자신감이 떨어진다", "별일 아닌데 자꾸 눈물이 난다", "치료를 계속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남성 역시 무기력감과 수면 부족이 반복되면서 몸의 리듬이 흐트러진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 배경에는 햇빛과 호르몬을 연결하는 우리 몸의 정교한 생체시계가 숨어 있다. 우리 몸은 생각보다 햇빛에 충실하다. 아침 햇살이 눈으로 들어오면 뇌는 '낮이 시작됐다'는 신호를 받고 세로토닌 분비를 늘린다. 세로토닌은 흔히 행복호르몬이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감정 안정뿐 아니라 의욕과 집중력, 생체리듬을 유지하는 핵심 신경전달물질이다. 그러나 장마철처럼 흐린 날이
용인신문 | 많은 남성들은 여름철 생식기 건강을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더위'를 떠올린다. 하지만 남성 난임 전문의(비뇨기과 의사)들은 오히려 장마철이 더 까다로운 계절이라고 말한다. 기온 자체보다 높은 습도와 통풍 부족, 젖은 속옷이 장시간 이어지는 환경이 정자가 만들어지는 고환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고환은 인체에서 매우 독특한 기관이다. 심장이나 간처럼 몸속 깊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체외로 돌출돼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정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체온보다 약 2~4℃ 낮은 환경이 유지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마철에는 이 자연스러운 냉각 시스템이 쉽게 무너진다. 비를 맞아 속옷이 젖은 채 오래 생활하거나, 습한 환경에서 꽉 끼는 속옷을 계속 입고 있으면 열과 습기가 빠져나가지 못한다. 고환 주변의 미세한 온도가 올라가면 정자를 만드는 세포들은 가장 먼저 스트레스를 받는다. 실제로 최근 생식의학 연구들은 고환 온도가 반복적으로 상승하면 정자 농도와 운동성, 정상 형태 비율이 감소할 가능성을 꾸준히 보고하고 있다. 고온 환경이 길어질수록 정자 DNA 손상도 증가할 수 있다는 연구도 적지 않다. 장마철의 또 다른 문제는 습도다. 높은 습
용인신문 | "장마가 끝나면 임신이 잘된다." 난임 진료를 오래 한 의사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실제로 일부 의료진은 "초가을이 되면 자연임신 사례나 시험관아기(IVF) 임신이 조금 늘어나는 것 같다"는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정말 장마가 끝나면 임신이 늘어날까. 결론부터 말하면 장마가 임신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마 이후 찾아오는 계절 변화가 생식 기능에 긍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줄 가능성은 충분하다. 최근 생식의학은 임신이 단순히 난자와 정자의 문제가 아니라 수면, 스트레스, 체온, 햇빛, 생활리듬까지 영향을 받는 복합적인 생리 현상이라는 사실을 잇달아 밝혀내고 있다. 장마가 끝난 뒤 찾아오는 변화는 생각보다 크다. 며칠씩 이어지던 비가 그치고 햇볕이 비치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생활패턴도 달라진다. 눅눅한 습도는 낮아지고 실외 활동은 늘어난다. 밤에는 숙면을 취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기분도 한결 가벼워진다. 단순한 기분 변화처럼 보이지만 우리 몸속에서는 생식호르몬을 조절하는 생체시계가 다시 정상 궤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람의 몸은 생각보다 계절 변화에 민감하다. 햇빛은 멜라토닌과 코르티솔 분비를 조절하고
용인신문 | 뇌는 첫사랑을 '중요한 사건'으로 저장한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오래된 노래 한 곡이 흘러나온다. 불과 몇 초 만에 기억은 수십 년 전으로 건너간다. 교복을 입고 걷던 골목, 버스 창밖으로 스치던 풍경, 함께 웃던 친구들, 그리고 오래전 헤어진 첫사랑의 얼굴까지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기억은 사진처럼 차례대로 보관되는 것이 아니다. 한 곡의 노래가 과거 전체를 불러내는 현상은 인간의 뇌가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단서다. 많은 사람들은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잊지 못하는 것은 한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존재했던 자신의 시간일 가능성이 더 크다. 인간의 뇌는 '처음'이라는 경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첫사랑은 대부분 처음으로 강한 설렘과 두려움, 행복과 상실을 동시에 경험하는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 옥시토신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고,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와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는 그 순간을 깊이 각인한다. 첫사랑이 오래 남는 이유는 사랑이 특별해서만이 아니다. 뇌가 그것을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 기억을 깨우는 가장 강력한 열쇠
용인신문 | 위장약과 배란의 불편한 진실 위와 난소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나는 음식을 소화하는 기관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을 만드는 기관이다. 그래서 위장약이 배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낯설다. 인체는 장기별로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위와 난소도 뇌와 호르몬이라는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일부 위장약은 위장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뇌의 호르몬 조절 시스템을 변화시키고, 그 결과 배란 주기까지 흔들 수 있다. 실제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생리불순이나 배란장애를 평가할 때 복용 중인 약물이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모든 위장약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위산을 억제하는 약이나 일반 제산제 대부분은 배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위장운동촉진제는 이야기가 다르다. 위장운동촉진제는 위와 장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만들어 음식이 잘 내려가도록 돕는 약이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일부는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을 억제한다. 도파민은 단순히 위장운동을 조절하는 물질이 아니다. 뇌하수체에서 프로락틴(Prolactin)이 과도하게 분비되지 않도록 억제하는 중요한 역
용인신문 | 생리 때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다. 많은 여성은 이를 '원래 생리통이 심한 체질' 정도로 여기고 참는다. 하지만 산부인과에서는 이 통증을 다르게 본다. 심한 생리통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라 자궁이 보내는 구조적 이상 신호일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임신을 어렵게 만드는 질환의 첫 번째 경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난임 진료실에서는 "생리통이 심했는데 참고 지냈다"는 여성들 가운데 뒤늦게 자궁내막증이나 자궁선근증이 발견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생리가 시작되면 자궁은 임신을 준비하며 두꺼워졌던 자궁내막을 몸 밖으로 배출하기 위해 강하게 수축한다. 이 과정에서 분비되는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생리활성 물질은 자궁 수축을 촉진하지만, 과도하게 분비되면 혈관을 수축시키고 통증을 크게 증가시킨다. 생리통이 심한 여성일수록 이 물질의 농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통증은 왜 허리에서 느껴질까. 원인은 '연관통(referred pain)'이다. 자궁과 허리는 골반 안의 신경망을 공유하기 때문에 자궁에서 시작된 통증이 허리와 엉덩이로 전달된다. 실제 아픈 곳은 자궁인데 뇌는 허리가 아픈 것으로
용인신문 | 좋은 균이 떠나면 질염이 찾아온다 휴가의 계절이 왔다. 바다와 계곡, 워터파크와 수영장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시원한 물속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즐거움은 여름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하지만 즐거운 물놀이가 끝난 뒤 여성들에게는 또 하나의 여름 손님이 찾아오기도 한다. 바로 질염이다. 여름철에는 산부인과를 찾는 여성들 가운데 질염을 호소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난다. 높은 기온과 습도, 땀, 젖은 수영복, 통풍이 잘되지 않는 옷차림은 세균과 곰팡이가 증식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여기에 여행으로 인한 피로와 수면 부족, 불규칙한 식사까지 겹치면 우리 몸의 면역 균형도 흔들리기 쉽다. 많은 여성들은 질염을 하나의 질환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질염은 감기처럼 하나의 병이 아니다. 원인에 따라 전혀 다른 질환이며, 치료법도 달라진다. 냉이 많다고 모두 같은 질염이 아니고, 가렵다고 모두 같은 약을 쓰는 것도 아니다. 사실 건강한 질은 '무균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미생물이 서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작은 생태계다. 그 중심에는 락토바실러스라는 유산균이 있다. 이 유익균은 젖산을 만들어 질 내부를 약산성으로 유지하고, 외부의 세균과 곰팡이가
용인신문 | "난자가 예쁘네요."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난임병원에서 흔히 들을 수 있던 말이다. 난자가 크고 둥글며 세포질이 깨끗하고 투명하면 좋은 난자라고 설명했다. 배아연구실에서도 형태학적 평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고, 환자들 역시 "난자가 잘 나왔나요?"보다 "난자가 예쁘게 나왔나요?"를 더 많이 물었다. 당시로서는 틀린 판단이 아니었다.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정보가 난자의 건강을 평가하는 거의 유일한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식의학은 지난 10여 년 사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고, 그와 함께 좋은 난자의 정의도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오늘날 생식의학은 난자의 겉모습보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 아무리 모양이 완벽한 난자라도 염색체에 이상이 있으면 수정이 되더라도 착상에 실패하거나 유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외형은 다소 평범해 보여도 염색체가 안정적이고 세포 안의 기능이 건강하다면 건강한 배아로 성장해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제 현미경은 난자의 얼굴을 보여줄 뿐, 생명력을 모두 보여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것이다. 그래서 최근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는 요소는 염색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