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택배 영업점과 직접 계약서를 쓰지 않았더라도 영업점이 처음부터 ‘2인 1조’ 근무 사실을 알고 있었고 실제 택배 배송 업무를 수행했다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산재보험 적용 여부를 계약서에 이름이 적혀 있는지, 운송사업 허가를 갖췄는지와 같은 형식적 요건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실제로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노무를 제공했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취지다.
택배·배달 등 특수고용 형태의 노동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계약 관계의 외형보다 실제 업무 수행 관계를 중시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택배 배송 도중 쓰러져 숨진 A씨의 부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공단은 A씨의 사망이 업무와 관련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A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나 산재보험법상 노무제공자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며 유족급여 지급을 거부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 “계약서 이름 없어도 실질적 위탁관계 인정”
사건의 출발점은 택배 영업점이 낸 채용공고였다.
공고에는 차량 한 대를 이용해 부부나 지인, 친구 등이 2인 1조로 근무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A씨와 지인 B씨는 해당 공고를 보고 함께 택배 배송 일을 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 유류비와 보험료 등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배송 과정에서 각자 어떤 업무를 맡을지까지 구체적으로 정했다.
B씨는 영업점과 화물운송계약을 체결하기 전에도 A씨와 함께 일할 계획이라는 사실을 영업점에 알렸다.
영업점 역시 두 사람이 함께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A씨와 B씨 모두에게 동일한 택배기사 사전교육을 실시했다.
실제 배송도 두 사람이 함께 했다. A씨는 배송지에서 물품을 차량에서 내리고 전달하는 등 택배 배송 과정의 핵심 업무를 맡았다.
그러던 중 A씨가 배송 과정에서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사망 원인은 열사병으로 추정됐다.
쟁점은 A씨가 법적으로 ‘택배서비스종사자’와 산재보험법상 ‘노무제공자’에 해당하는지였다.
A씨 명의의 별도 운송계약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계약서 작성 여부만으로 택배서비스종사자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봤다.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에 따르면 택배서비스종사자는 택배사업자나 영업점 등과 위탁계약 또는 근로계약 등을 맺고 화물의 집화·배송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재판부는 A씨가 형식적으로 계약서에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계약 체결 이전부터 B씨와 함께 근무할 예정이었고, 영업점 역시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영업점이 A씨에게 B씨와 동일한 교육을 실시했고 A씨가 실제 배송 현장에서 물품 하차 등 핵심적인 배송 업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했다는 점을 근거로 사실상 업무 위탁관계가 형성돼 있었다고 판단했다.
△ 운송 허가 없어도 ‘산재보험’ 가능
공단은 또 A씨와 B씨가 화물자동차 운송사업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허가가 없는 상태에서 배송 업무를 했기 때문에 법에서 규정한 택배서비스종사자로 볼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법원은 이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생활물류서비스법은 택배서비스사업자에게 일정한 운송사업 허가를 요구하고 있지만 택배서비스종사자의 정의에는 운송사업 허가를 별도의 요건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B씨가 영업점을 통해 운송사업 허가를 신청했지만 행정 처리에 시간이 걸렸고 A씨가 사망할 때까지 허가가 나오지 않았던 사정도 고려됐다.
재판부는 종사자에게 별도의 운송사업 허가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산재보험의 보호대상 자체에서 제외하는 것은 산재보험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 산재보험 목적, 근로자 보호
이번 판결에서 법원이 강조한 것은 산재보험 제도의 목적이었다.
산재보험법상 노무제공자 제도는 전통적인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가 아니더라도 실제 업무 수행 과정에서 재해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다.
택배기사나 배달기사처럼 계약 형태가 다양하고 사업자와 근로자의 경계에 있는 특수고용 종사자까지 산업재해 보호망 안에 포함하기 위한 제도다.
재판부는 운송사업 허가 여부가 이런 보호 필요성을 판단하는 본질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봤다.
A씨와 B씨가 서로 수익과 비용을 나눈 동업관계였다는 점 역시 산재보험 적용을 부정하는 근거가 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동업자였더라도 택배사업자나 영업점과의 관계에서는 각각 자신의 역할을 직접 수행하며 노동력을 제공한 사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법원이 본 것은 ‘누구의 이름으로 계약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실제로 배송 업무를 했느냐’였다.
재판부는 A씨가 산재보험법상 노무제공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근로복지공단이 내린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했다.
이번 판결은 택배업처럼 한 명의 계약자가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일하는 형태가 적지 않은 업종에서 산재보험 적용 범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사업주나 영업점이 공동근무 사실을 알고 업무교육과 배송 업무를 사실상 관리해왔다면 서면계약에 이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산재보험 보호에서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을 법원이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계약서상 지위와 실제 업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사례가 늘어나는 가운데, 산업재해 보호 여부는 계약의 명칭이나 외형보다 실제 노동 제공 관계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흐름이 한층 뚜렷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