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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난하면 더 주고, 덜 가난하면 깎는다”…기초연금 18년 만에 대수술

‘노인 70% 지급’ 원칙 폐기 수순…소득 기준으로 재편
최저소득층 최대 40만원…기존 수급자도 단계적 감액 가능
대통령 “받던 연금 깎는 건 문제” 발언과 충돌…정부 발표 돌연 취소

 

용인신문 |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해온 기초연금의 틀이 크게 바뀔 전망이다. 정부가 일률적으로 수급 대상을 정해 같은 금액을 지급하던 현행 방식에서 벗어나 소득이 적은 노인에게는 더 주고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노인은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연금액을 줄이는 방식의 개편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기초연금을 받아온 노인 가운데 일부도 앞으로 연금액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저소득 노인의 보장을 강화하는 대신 전체 수급 범위를 좁히는 이른바 ‘하후상박’ 개편을 추진하면서 기초연금이 사실상 ‘노인 70%의 연금’에서 ‘저소득 노인 중심 연금’으로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 내부에서도 최종 조율이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7일 기자들을 대상으로 기초연금 개편안을 설명할 예정이었으나 브리핑을 불과 1시간여 앞두고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아직 새로운 발표 일정도 잡히지 않았다. 노인층의 실질 소득과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인 데다 기존 수급자의 연금을 줄이는 문제를 놓고 정부 안에서도 부담이 커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하위 70%’ 없애고 소득으로 가른다

개편의 가장 큰 변화는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이다.

 

현재는 만 65세 이상 노인의 소득과 재산을 소득인정액으로 환산해 전체 노인의 약 70%가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선정기준액을 정한다. 개인의 소득이 얼마인지보다 ‘노인 전체 가운데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느냐’가 중요한 구조다.

 

정부가 검토 중인 방안은 이 같은 ‘목표수급률 70%’ 방식을 없애고 기준중위소득을 직접 적용하는 것이다.

 

검토안대로라면 내년에는 기준중위소득 90% 이하인 노인이 기초연금 대상이 되고, 이후 지급 기준은 2028년 86.6%, 2029년 83.3%, 2030년에는 80% 이하로 단계적으로 낮아진다.

 

현재 기초연금 선정기준액이 기준중위소득의 약 96.3%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간이 갈수록 신규 수급 대상은 줄어드는 구조다. 고령 인구 증가에 따라 기초연금 지출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지급 대상을 저소득층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가난할수록 더 준다…최대 월 40만원

지급액에도 차등을 두는 방안이 추진된다. 현행 기초연금은 소득 하위 70%에 포함되면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올해 기준 최대 월 35만원가량을 받는 것이 기본 구조다. 앞으로는 수급자의 소득을 여러 구간으로 나눠 형편이 어려울수록 더 많은 연금을 지급한다는 구상이다.

 

기준중위소득 20% 이하의 최저소득층은 내년 월 38만원, 2028년에는 월 40만원까지 지급액을 올리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기준중위소득 20~40% 구간은 내년 35만9000원, 2028년 36만7000원 수준으로 인상한다. 반면 기준중위소득 40%를 넘는 수급자는 월 35만원 수준을 유지하는 방안이다.

 

현재처럼 수급자 대부분에게 비슷한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소득 수준에 따라 기초연금 자체에 차등을 두겠다는 것이다. 2028년이 되면 최저소득층과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수급자 사이의 월 지급액 차이는 최대 5만원까지 벌어지게 된다.

 

지금 받는 사람도 매년 줄어들 수 있다

가장 큰 논란은 기존 수급자다. 새로운 소득 기준을 적용하면 현재 기초연금을 받고 있는 노인 가운데 일부가 수급 기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부는 제도 변경 직후 연금을 한꺼번에 끊는 대신 일정 기간 지급액을 단계적으로 낮추는 경과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개편 첫해에는 기존 수급 규모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새 기준상 수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노인도 지금과 같은 금액을 지급하되 이후 연금액을 해마다 10%포인트씩 낮추는 방식이다.

 

현재 월 35만원을 받고 있는 노인이 새 소득 기준에서는 수급 대상에서 빠진다고 가정하면 첫해에는 35만원을 그대로 받지만 2년차 31만5000원, 3년차 28만원, 4년차 24만5000원, 5년차에는 21만원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수급 중단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는 장치지만 수급자 입장에서는 명백한 ‘연금 삭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은 “받던 것 깎는 건 문제”

이 때문에 개편안이 정치적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도 크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기초연금 제도의 개편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기존 수급자의 연금을 줄이는 방식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이미 받고 있는 걸 깎는 건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그러나 현재 검토되고 있는 방안에는 새 소득 기준에서 탈락한 기존 수급자의 지급액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정부안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대통령의 기존 발언과 정책 방향이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복지부가 예정됐던 브리핑을 직전에 취소한 배경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통령실과 관계 부처 간 최종 조율 과정에서 기존 수급자의 처리 방식이나 지급 기준을 다시 손보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저소득 부부 감액은 줄이고 직역연금 문턱 낮춘다

반대로 저소득 노인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일부 제도는 완화될 전망이다.

 

대표적인 것이 부부 감액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부부가 모두 기초연금을 받으면 각각의 연금액에서 20%를 감액한다. 정부는 기준중위소득 40% 이하의 저소득 부부에 대해서는 이 감액률을 10%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공무원연금·군인연금·사학연금 등 직역연금 수급자의 기초연금 문턱도 일부 낮아질 수 있다. 현재는 직역연금 수급자와 배우자가 원칙적으로 기초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기준중위소득 40% 이하의 저소득 직역연금 수급자는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복지 강화인가, 수급자 축소인가

이번 개편의 핵심은 결국 ‘넓게 나눠줄 것인가, 어려운 사람에게 집중할 것인가’의 선택이다.

 

정부 구상대로라면 저소득 노인은 지금보다 많은 기초연금을 받는다. 부부 감액도 줄고 그동안 기초연금에서 배제됐던 일부 저소득 직역연금 수급자도 새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지급 기준이 갈수록 낮아지면서 기초연금을 새로 받지 못하는 노인이 늘어날 수 있다. 이미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조차 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지급액이 단계적으로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기초연금은 2014년 도입된 이후 노인 빈곤을 완화하는 대표적인 현금복지 제도로 자리 잡았다. 특히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짧거나 별도의 노후소득이 없는 고령층에게는 사실상 생활비의 일부다. 단 몇만원의 증감도 노인가구의 생계에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브리핑까지 준비했던 개편안을 발표 직전 거둬들인 것은 그만큼 이해관계와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방증이다.

 

기초연금을 저소득층 중심으로 더욱 두텁게 만들 것인지, 지금처럼 전체 노인의 상당수가 함께 혜택을 받는 제도를 유지할 것인지가 향후 논의의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정부가 다시 내놓을 최종안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대목도 결국 하나다.

 

“누가 더 받느냐”보다 “누가 덜 받게 되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