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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 사람

희망을 연주하는 ‘음악전도사’

휴먼 아카이브 : 용인을 만든 사람들 6 _ 서석정 인성교육강사

 

 

용인 교육사·지역사회 살아있는 전설
30여 년간 모교·지역 학교서 음악 교사
남사중·원삼중 교장 역임 ‘한평생 열정’
수많은 교가 직접 작곡… 이젠 인생 3막

 

용인신문 | “건전한 마음은 상대의 건전한 마음을 끌어냅니다. 악기를 메고 사람들의 마음 문을 두드릴 수만 있다면 숨이 다하는 날까지 이 길을 걸을 겁니다.”

 

열정과 온기가 가득한 목소리, 손때 묻은 아코디언에서 흘러나오는 정겨운 멜로디. 87세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청청한 기운을 발산하는 서석정 선생은 용인 교육사와 지역사회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30여 년간 모교와 지역 학교에서 음악 교사로 봉직하고, 남사중·원삼중 교장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수많은 지역 학교의 교가를 직접 작곡한 인물. 이제는 아코디언을 메고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음악전도사’로 살아가는 그의 인생 3막 이야기를 들었다.

 

■ 거장에게 배운 엘리트 음악도, 고향 모교로 돌아오다

1939년 처인구 남사면 방아리(아르실)에서 태어난 서석정 선생의 집안은 130년 넘게 신앙생활을 이어온 기독교 가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찬송가를 듣고 부르며 자연스럽게 음악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던 그는 용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2년 서라벌예술대학교 작곡과에 입학했다.

 

당시 그를 가르친 스승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가고파’의 김동진, ‘어머니 은혜’의 이흥렬, ‘자장가’의 김대현 선생 등 한국 음악사의 거장들이 그의 은사였다. 당대 최고의 엘리트 음악 교육을 받은 그였지만 그의 시선은 언제나 고향 용인을 향해 있었다.

 

“남사 방아리 고향 집에서 용인읍내 학교까지 걸어 다니면 왕복 8시간이 걸렸어요. 차도 없던 시절이었죠. 용인고를 졸업하고 1972년 모교에 음악 교사로 돌아왔을 때 내 교직 인생의 진정한 막이 올랐습니다.”

 

그는 용인 중·고등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에서 40년 가까이 평교사, 학생과장, 교감, 교장(원삼중·남사중)을 지냈다. 남사중·포곡중·수지중·죽전고·백현고 등 용인 시내 수많은 초·중·고등학교의 교가가 바로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 베푼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공납금 대준 제자 재회

40년 교직 생활 동안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사랑과 희망’이었다. 1960년대 지독하게 가난했던 시절, 공납금을 내지 못해 학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한 제자들을 외면하지 못했다.

 

“1968년 가평 재직 시절, 부모님이 병으로 쓰러져 공납금을 낼 형편이 안되는 제자가 있었어요. 내 사정도 넉넉지 않았지만 학업을 포기하게 둘 수 없어 공납금을 내줬습니다. 그 제자가 일흔이 넘은 지금도 매년 제게 찾아와 인사를 해요. 베푼 사랑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음악 수업뿐만 아니라 학생과장으로 20년을 봉사하며 교사의 사명과 인성 교육에 힘썼던 그는 퇴직 후 활동 영역을 넓혀 법무연수원, 경찰청, 교도소, 민방위 교육장, 노인대학 등으로 향했다.

 

선생의 강의는 특별했다. 지루한 이론 대신 인생의 깊이가 담긴 재담을 풀어놓고 손때 묻은 아코디언으로 ‘고향의 봄’, ‘과수원 길’ 같은 정겨운 노래를 연주했다.

 

“언젠가 길을 지나가는데 어떤 분이 자전거를 멈춰 세우며 인사를 하더군요. 20년 전 문예회관 민방위 교육 때 제 강의를 듣고 감명을 받았던 사람이었어요. 선생이 말한 ‘사랑, 정직, 희망, 봉사, 친절’을 가슴에 품고 평생 바르게 살아왔다며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잡는데, 강사로서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수원교도소, 안양교도소 등 교정 시설 특강에서도 그의 음악과 따뜻한 포옹은 중범죄자들의 마음을 녹였고 단단히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어 눈물 흘리게 했다.

 

■ 죽음의 문턱서 되찾은 시력… 마지막까지 이어질 ‘음악 전도

늘 밝은 에너지를 전하는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71세가 되던 해,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뇌경색으로 쓰러진 것이다. 한 달간의 병원 투병 끝에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뇌경색 여파로 눈의 실핏줄이 터져 시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의사도 시신경이 끊어져 고칠 수 없다고 했어요. 하지만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간절한 신앙과 믿음으로 한 달간 항생제 치료를 받으며 견뎠죠. 퇴원을 하루 앞둔 날, 기적처럼 앞이 환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얻은 이 삶은 세상에 사랑을 더 많이 베풀라는 뜻이라 믿습니다.”

 

그가 운명처럼 만나 지금까지 분신처럼 들고 다니는 아코디언 역시 인연의 결과다. 단골 자전거방 선반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아코디언을 발견하고 즉석에서 연주하자, 자전거방 주인이 “배우려 해도 안 되던 악기인데 임자는 따로 있었습니다”라며 흔쾌히 선물로 건넨 것이 지금의 아코디언이다. 선생은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진리를 이 악기를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고 말했다.

 

■ 시민에 전하는 말 “서로 사랑하고, 향수를 잊지 마세요”

서석정 선생에게 ‘용인’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다. 87년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정든 고향이자 애정이 넘치는 삶의 터전이다. 급속한 도시화로 급변하는 용인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에는 따뜻한 우려와 당부가 함께 담겨 있다.

 

“요즘 용인은 발전도 빠르고 외지인들도 많이 들어오면서 예전의 순수했던 공동체 정서가 조금씩 퇴색하고 이기주의가 팽창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용인시민 여러분, 바쁜 일상 속에서도 가슴속에 ‘향수’를 잃지 마십시오. 사랑, 정직, 친절, 봉사의 마음을 품어주세요.”

 

그는 타인을 향한 긍정적인 마음이 결국 나 자신과 사회 전체를 아름답게 변화시킨다고 강조했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처럼 개에게 먹이를 주면 침을 흘리듯 우리가 사랑을 베풀면 상대도 마음을 열고 감동하게 됩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사랑을 주면 적이 사라집니다. 명랑하고 밝은 건전한 마음이 용인 전체에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 인터뷰 마치며 용인이 기억해야 할 이름

여전히 아코디언을 메고 주름진 손으로 정갈한 건반을 누르는 서석정 선생. 딸(성남제일교회 지휘자)과 사위(태성고 음악교사) 역시 그의 뒤를 이어 음악의 길을 걷고 있다. ‘음악 가문’을 이룬 선생에게 앞으로 용인 지역사회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저는 거창한 이름보다 시민들에게 향수와 애국심, 사랑과 친절을 불러일으켰던 따뜻한 음악 선생님으로 기억되면 족합니다. 죽는 날까지 주민들을 위해 노래하고 희망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87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맑은 눈빛을 지닌 서석정 선생. 손때 묻은 아코디언에서 퍼지는 깊은 울림은 급변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가 잊고 살았던 ‘인간애’와 ‘고향의 따뜻함’을 일깨우는 용인의 귀중한 유산이다.

 

■ 주요 약력

- 1959년 용인고등학교 졸업 / 1962년 서라벌예술대학교 작곡과 졸업

- 1967년~1997년 가평 중·고, 용인 중·고, 백암 중·고 음악교사 재직

- 1997년~2005년 송전중·백암중 교감, 원삼중·남사중 교장 역임

- 용인 지역 다수 중·고등학교 교가 및 남사 애향가 작곡

- (전) 법무연수원, 경찰청, 민방위, 인성교육 전문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