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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BMI의 배신 … 정상 체중 5명 중 1명은 ‘숨은 복부비만’

존스홉킨스대 26만 명 추적 연구 … 내장지방 ‘경고’

용인신문 |


 

체중계 숫자가 정상이라고 건강까지 정상인 것은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마른 체형이고 체질량지수(BMI)도 정상 범위에 들어가지만 배 주변에 지방이 몰려 있다면 심근경색과 뇌졸중을 비롯한 심뇌혈관질환 위험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동안 비만을 판단하는 대표적인 기준은 체중과 BMI였다. 하지만 앞으로 건강검진에서 더 유심히 살펴봐야 할 숫자는 몸무게가 아니라 ‘허리둘레’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연구진이 26만 명 이상을 장기간 추적한 결과, BMI만으로는 찾아내기 어려운 이른바 ‘숨은 복부비만’이 심혈관 건강을 위협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상 체중으로 분류된 사람도 허리둘레나 허리-엉덩이 비율이 높으면 심뇌혈관질환 발생과 사망 위험이 최대 50% 증가했다.

 

연구 결과는 11일 미국심장학회저널에 발표됐다.

이번 연구가 던진 메시지는 단순하다. “얼마나 무거운가”보다 “지방이 어디에 쌓였는가”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BMI는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이다. 계산이 쉽고 인구집단의 비만 수준을 비교하기 편해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돼 왔다.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70㎏이라는 체중 가운데 얼마가 근육이고 얼마가 지방인지 알 수 없고, 지방이 엉덩이나 허벅지에 있는지 복부 장기 주변에 몰려 있는지도 구별하지 못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배 안쪽 장기를 둘러싸는 ‘내장지방’이다. 피부 바로 아래 축적되는 피하지방과 달리 내장지방은 대사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인슐린 저항성이나 만성 염증 등과 연결될 수 있어 당뇨병과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이는 지방으로 꼽힌다.

 

연구진은 그래서 BMI만 보는 기존 방식에 허리둘레와 허리-엉덩이 비율을 함께 적용했다.

 

허리-엉덩이 비율은 허리둘레를 엉덩이둘레로 나눈 값이다. 같은 체중이라도 지방이 복부에 집중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세계보건기구 기준으로는 이 비율이 남성 0.9 이상, 여성 0.85 이상이면 복부비만 위험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심근경색과 뇌졸중, 심부전, 심방세동, 관상동맥질환 등을 포함한 9개 심뇌혈관질환을 대상으로 26만명이 넘는 사람을 평균 약 20년 동안 추적했다.

 

결과는 기존의 ‘정상 체중=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인식을 흔들었다.

 

BMI로 정상 체중 판정을 받은 사람 가운데서도 5%는 허리둘레 기준 복부비만에 해당했고, 허리-엉덩이 비율을 적용하면 그 비율은 18%까지 올라갔다. 정상 체중인 사람 5명 가운데 거의 1명은 체중계만 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복부비만 가능성이 있었던 셈이다.

 

과체중군에서는 허리둘레 기준 39%, 허리-엉덩이 비율 기준 40%가 정상 범위를 벗어났다. 비만군에서는 각각 91%와 55%였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질병 위험이었다.

 

BMI가 정상이어도 허리둘레 또는 허리-엉덩이 비율이 기준치를 넘은 사람은 두 지표가 모두 정상인 사람과 비교해 9가지 심뇌혈관질환 발생 및 사망 위험이 15~50% 높았다.

 

반대의 결과도 나왔다.

BMI만 보면 비만에 해당하더라도 허리둘레가 정상인 사람은 BMI와 허리둘레가 모두 정상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심뇌혈관질환 위험에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같은 ‘비만’이라도 몸속 지방의 위치에 따라 위험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키와 몸무게가 비슷한 두 사람이 있다고 해도 한 사람은 지방이 엉덩이와 허벅지 등에 비교적 분산돼 있고, 다른 사람은 복부에 몰려 있다면 두 사람의 심혈관 건강 위험을 단순히 같은 BMI라는 이유만으로 동일하게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가 체중 감량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비만은 여전히 고혈압과 당뇨병, 심혈관질환 등 다양한 만성질환의 주요 위험요인이다.

 

다만 체중계의 숫자가 줄었다는 사실만으로 건강 개선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몸무게가 줄지 않아 실망하더라도 허리둘레가 감소하고 있다면 건강 측면에서는 의미 있는 변화일 수 있다. 반대로 체중이 정상 범위에 들어왔다고 해도 배가 계속 나온 상태라면 건강관리에 더 신경 써야 한다.

 

마이클 J. 블라하 존스홉킨스대 의대 심장질환예방센터 교수 연구팀은 정상 BMI에 속하는 사람도 복부 지방을 별도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BMI 하나만으로 심혈관질환 위험을 평가할 경우 위험군 일부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심장학회저널 편집장인 하란 M. 크룸홀츠 예일대 의대 교수 역시 지금까지 의료 현장에서 지나치게 BMI에 집중해 왔다며 앞으로는 지방의 양뿐 아니라 몸속 어느 부위에 지방이 축적돼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고 평가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매일 체중계에 올라서는 것보다 때로는 줄자를 들어 허리둘레를 재보는 것이 더 많은 정보를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체중은 정상인데 배만 나온 사람, 살은 빠졌지만 허리둘레에는 변화가 없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제 비만 관리의 질문은 ‘몇 ㎏인가’에서 ‘그 지방이 어디에 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