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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진보·보수 모두 공격해 갈등 증폭”

KAIST, 네이버 댓글 1억여 건 ‘분석’ … 의심 계정 2만 4천 개

용인신문 |

 

 

 

KAIST, 네이버 댓글 1억1000만건 AI 분석…이용자 400만명 중 0.6% ‘외국 연계 의심’

전·현직 대통령·대선후보 등 집중 공격…특정 진영 지지보다 ‘한국 내부 충돌’ 증폭

 

온라인 여론전에 외국 세력이 개입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특정 국가를 노골적으로 찬양하거나 한쪽 정치세력을 일방적으로 밀어주는 방식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국내 연구진이 20년에 걸친 네이버 뉴스 댓글을 분석한 결과는 조금 달랐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국내 정치인을 공격하면서 한국 사회 내부의 갈등 자체를 키우는 계정들이 대규모로 포착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네이버 뉴스 댓글 약 1억 1000만 건을 분석한 결과, 외국과 연계돼 국내 여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의심되는 계정 2만 3998개를 식별했다고 12일 밝혔다.

 

전체 분석 대상 네이버 뉴스 이용자 약 400만 명 가운데 0.6% 수준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극히 일부지만,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이들이 남긴 댓글의 내용과 활동 방식이었다.

 

의심 계정들은 한쪽 정치 진영만을 집중적으로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전형적인 ‘정치 팬덤’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진보와 보수 양쪽의 주요 정치인을 번갈아 비난하며 대립을 부추기는 경향이 나타났다.

 

실제로 이들 계정이 집중적으로 겨냥한 상위 10개 대상 가운데 7명이 국내 유명 정치인이었다. 전·현직 대통령과 대통령 선거 후보 등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큰 인물들이 진영을 가리지 않고 공격 대상에 포함됐다.

 

외부 세력이 국내 여론에 영향을 미치려 할 경우 반드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세력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내부의 불신과 분열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움직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연구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AI가 계정을 단순히 ‘정상’과 ‘의심’으로만 나누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이른바 ‘설명 가능한 AI’를 적용해 특정 계정을 의심 대상으로 판단한 이유와 근거가 된 댓글의 표현, 활동 패턴 등을 함께 분석하도록 했다.

 

기존의 온라인 여론조작 탐지 기술이 비정상적인 접속이나 반복적인 댓글 작성 같은 행동 패턴을 찾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 연구는 댓글이 어떤 대상을 공격하고 어떤 방식으로 갈등을 확산시키는지까지 들여다본 셈이다.

 

연구를 이끈 이원재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의심 계정들이 외국을 직접적으로 찬양하기보다는 국내 정치인을 공격하면서 한국 사회의 갈등을 키우는 특징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가 주목되는 이유는 선거를 비롯해 정치·사회적 긴장이 높아지는 시기에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여론전’을 찾아낼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특히 인터넷 여론조작의 목표가 특정 주장에 대한 동의를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집단이 상대방을 더 불신하도록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회가 둘로 갈라질수록 사실관계보다 분노와 적대감이 앞서고, 작은 자극도 훨씬 큰 갈등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 분류된 2만 3998개 계정은 어디까지나 AI 분석을 통해 ‘외국 연계 가능성이 의심된다’고 분류된 계정이다.

 

개별 계정이 실제 외국 정부나 기관의 지시를 받아 활동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향후 실제 운영 주체와 조직적 연계 여부 등을 확인하는 추가 검증이 필요한 이유다.

 

그럼에도 1억 건이 넘는 댓글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추적해 온라인 갈등 증폭 계정을 가려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온라인 여론전의 목적은 더 이상 ‘우리 편을 늘리는 것’만이 아닐 수 있다. 상대 진영뿐 아니라 양쪽을 동시에 공격해 사회 전체를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

 

한국의 댓글 공간에서 발견된 2만 4000개의 의심 계정은 앞으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여론조작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