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의료진이 필요한 조치를 다했는데도 피할 수 없었던 분만 사고에 대해 국가가 책임지는 범위가 한층 넓어진다. 그동안 신생아 뇌성마비와 신생아 사망, 산모 사망에 한정됐던 국가 보상 대상에 산모의 중증장애까지 포함된다. 분만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항력적 사고를 의료진이나 환자 개인의 책임으로만 남겨두지 않겠다는 방향 전환이다.
보건복지부는 11일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됐다고 밝혔다.
핵심은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안전망 확대다. 불가항력 의료사고란 의료진이 당시 의료 수준에 맞는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분만 과정이나 분만 이후 예측하거나 막기 어려운 이유로 발생한 사고를 말한다.
지금까지 국가 보상은 신생아 뇌성마비와 신생아 사망, 산모 사망 등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 적용됐다. 그러나 이달부터 산모가 분만 과정에서 심각한 장애를 입은 경우도 보상 대상에 포함된다.
분만 과정에서 생명을 건졌더라도 중증장애가 남으면 산모와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치료와 돌봄 부담이 장기간 이어진다는 현실을 제도에 반영한 것이다.
보상 수준도 이미 크게 높아졌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 한도를 종전 최대 3000만 원에서 3억 원으로 10배 올렸다. 이번에는 보상 금액에 이어 대상까지 넓히면서 분만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을 단계적으로 강화하는 모습이다.
정부가 제도를 확대하는 배경에는 필수의료 현장의 위기도 자리 잡고 있다. 산부인과를 비롯한 고위험 의료 분야에서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의료사고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 부담이 의료진의 진료 기피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계속돼왔다. 특히 분만은 정상적으로 진행되다가도 산모나 태아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할 수 있어 의료진이 부담해야 하는 위험이 큰 분야로 꼽힌다.
정부는 이에 따라 의료진의 과실 여부를 따지는 방식만으로 의료사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불가피하게 발생한 피해는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보상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고 있다. 환자는 보다 신속하게 피해를 구제받고, 의료진은 예측하기 어려운 사고에 대한 과도한 부담에서 벗어나 진료에 집중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국가 보상은 분만 분야를 넘어 필수의료 전반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내년 5월 27일부터는 현재 분만 관련 사고로 제한된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 제도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에서 발생한 의료사고까지 확대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진료 분야와 의료행위를 국가가 보상할지는 향후 예산과 의료 현장의 위험도 등을 고려해 결정된다. 정부는 생명과 직결되지만 사고 위험과 법적 부담 때문에 의료진이 기피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대상을 검토할 방침이다.
곽순헌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이번 제도 개편이 환자에게는 보다 신속하고 충분한 피해 회복 기회를 제공하고 의료인에게는 안정적인 진료 환경을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개정의 의미는 보상 대상 하나가 추가된 데 그치지 않는다. 의료진에게 과실이 없는 사고까지 환자와 의사가 서로 책임을 다투도록 내버려두던 구조에서 벗어나, 피하기 어려운 의료 위험의 일부를 국가가 함께 부담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분만실에서 발생한 불행을 두고 반드시 누군가의 잘못을 찾아야 했던 방식에서, 불가피한 사고라면 국가가 피해 회복에 나서는 방식으로 의료사고 안전망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