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120개월. 국민연금을 매달 평생 받을 수 있느냐, 그동안 낸 돈을 한꺼번에 돌려받느냐를 가르는 숫자다.
국민연금 노령연금을 받기 위한 최소 가입기간은 10년, 정확히 120개월이다. 119개월을 납부했다 하더라도 그대로 수급연령에 도달하면 노령연금 수급권을 확보하지 못한다.
물론 방법은 있다. 60세 이후에도 ‘임의계속가입’을 통해 부족한 기간을 채우면 평생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이 문턱을 넘는 대신 그동안 쌓아놓은 국민연금을 목돈으로 찾아가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2025년 국민연금 반환일시금 지급액은 1조 3253억 원. 역대 최대다.
반환일시금을 받아간 사람도 19만 9383명에 달했다. 거의 20만 명이다. 2017년 이후 8년 만에 가장 많은 규모다.
흥미로운 것은 반환일시금이 반드시 경제적으로 유리해서 선택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가령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8년에 그친 사람이 앞으로 2년 동안 월 10만 원씩 보험료를 추가 납부한다고 가정하면 추가 부담은 약 240만 원이다. 이후 월 23만 원의 노령연금을 받는다면 20년 동안 단순 누적액만 약 5520만 원이다.
반대로 지금 반환일시금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이 1100만 원이라면 선택지는 선명해진다.
지금 1100만 원을 받을 것인가, 몇 년을 기다려 5000만 원이 넘는 평생연금의 가능성을 확보할 것인가.
계산기만 놓고 보면 답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실제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선택은 계산기와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왜일까.
핵심은 ‘수익률’이 아니라 현금이다.
직장에서 퇴직하는 순간 월급은 끊기지만 생활비는 끊기지 않는다. 주택대출과 전·월세 비용, 의료비, 자녀 지원비용도 남는다. 자영업에 뛰어들더라도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받을 연금액이 아무리 많더라도 당장 매달 보험료를 추가로 내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결국 일부 은퇴세대에게 국민연금 반환일시금은 투자상품의 ‘중도해지’가 아니라 당장의 생활을 버티기 위해 미래 소득을 앞당겨 쓰는 비상자금이 되고 있는 셈이다.
통계에서도 이런 흐름이 감지된다.
반환일시금 수급자는 2021년 18만 9205명에서 2022년 19만 9170명으로 늘었다. 2023년 17만 5279명으로 잠시 감소했지만 2024년 다시 19만 6290명으로 뛰었고 2025년에는 19만 9383명까지 증가했다.
지급액 증가세는 더욱 가파르다.
2021년 9407억 원에서 2022년 1조 744억 원으로 처음 1조 원을 넘어선 뒤 2023년 1조 1469억 원, 2024년 1조 2647억 원에 이어 2025년 1조 3253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숫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간단하지 않다.
국민연금 제도를 불신해 돈을 찾아가는 사람이 늘었다고만 볼 수도 없고, 반환일시금을 받는 것이 무조건 잘못된 선택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개인의 재정 상황에 따라 목돈이 더 절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평생 받을 연금을 포기해야 할 만큼 은퇴 직후의 삶이 팍팍한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노령연금에는 반환일시금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노령연금은 사망할 때까지 지급되며 물가상승률에 따라 연금액도 조정된다. 오래 살수록 누적 수령액이 증가한다.
반환일시금은 지금까지 낸 보험료와 일정 이자를 한꺼번에 돌려받으면 그것으로 끝난다. 당장의 목돈은 생기지만 이후 매달 들어올 노후소득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기대수명이 길어질수록 은퇴 이후 필요한 생활비는 늘어난다. 반면 정년 이후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국민연금을 목돈으로 먼저 소진하면 70대와 80대에 접어들수록 노후 빈곤 위험은 커질 수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측은 “한 번 반환일시금을 받았다고 과거 가입기간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후 국민연금 가입자 자격을 다시 얻은 사람이 과거 받은 반환일시금과 일정 이자를 반납하면 가입기간을 복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다시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목돈을 되돌려 놓을 경제적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는 것. 그래서 반환일시금 1조 3253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 기록을 단순한 국민연금 통계 하나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후를 위해 모은 돈을 노후가 시작되기도 전에 꺼내 쓰는 사람들.’
20만명에 육박한 반환일시금 수급자는 대한민국 은퇴세대가 맞닥뜨린 또 하나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